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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故 심재덕 수원시장 4주기 추도식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냉랭한 기온들로 오래도록 눈이 녹지 않았다. 故 심재덕 수원시장의 4주기 추도식이 있던 지난 14일은 모처럼 봄날처럼 따스한 온기가 감돌았다. 벌써 4주기라니 세월이 참 빠르다.

용인시 원삼면 두창저수지 건너편의 양지바른 곳에 고인의 묘소가 있다. 필자와는 그가 수원문화원장 시절이던 1989년 수원문화원에서 발간한 ‘수원사랑’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지면을 통해 필자는 ‘내가 보는 동료이야기’와 ‘인간애와 의무의 틈바구니에서’라는 에세이와 고향 땅 해남과 수원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

그가 무소속으로 민선 1·2기 시장을 지내고,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봄날 햇살처럼 따스한 인연을 이어나갔다. 어느 자리든, 기관의 모임이든 그는 필자에게 ‘고향이 땅끝마을 해남이지만 수원을 고향처럼 사랑한다’며 늘 ‘박 시인’ 하고 불러주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리운 사람은 떠나면 더 그리운가 보다. 그가 떠나고 4년 동안 필자는 몇 번을 혼자서, 또 그의 비서이자 필자의 친구인 장보웅과 함께 다녀오곤 했다. 그가 떠나고 적지 않은 세상의 파고를 접하면서 작가의 길과 직장의 길에서 세상을 모르고 사는 탓에 오해받거나 외로움들이 밀려올 때면 그의 묘소에 들러 술잔을 올리고 시 한 편 쓰고 내려오는 때가 많았다.

4주기가 되던 날, 새벽길을 달려 그의 묘지에 이르렀을 때 두창리 저수지 위에는 눈이 쌓여있고, 얼음판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심 시장은 살아생전에 얼음판과도 같은 삶 속에서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던가. 해가 이렇게 지나갔는데도 기억하고 찾아준 이들이 그의 추도식에 자리해 주었다.

해가 바뀌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때는 지속한 성장을 의미했지만 언제부터인가 하나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다는 의미가 돼버린 듯하다. 보이지 않던 횐 머리를 하고 있거나 주름살이 깊게 파인 지인들을 보면서 육체의 변화는 있었지만 심 시장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히 깊고 변하지 않았다.

생전에 심 시장은 시장실에서 필자와 차를 나누면서 따뜻하게 조언하셨다. “박 시인, 상처가 많은 사람은 더 고독함을 이겨내는 과정이 큰 법이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분주하게 살지만 박 시인은 항상 변함없이 우직한 길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에 정이 많이 간다네.”

심 시장은 자신의 길, 수원을 위해 살아가는 길을 묵묵히 걸어오면서 오래도록 자신의 긴 인생사를 들려주셨다. 필자에게 수원을 상징하는 휘장을 건네주며 수원사랑을 당부하셨다.

그날 추도식에서는 심재덕 기념사업회 전임 김병순 회장이 고인의 추억을 전해주었다. 심 시장은 외국에 가더라도 낯선 사람들이 자리한 곳이라면 마이크를 잡고 우리 고유의 화장실 문화를 소개하고 세계에 알리는 데 열정을 다했다고 한다.

고인이 전립선 암만 아니었다면, 그래서 10년만 더 살아계셨다면 수원이 변하고 경기도가 변하고 대한민국이 변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필자뿐 아니라 늘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고인, 그는 온몸을 다해 수원발전에 큰 업적을 남기셨다. 그가 못다 이룬 꿈인 화장실 문화운동이 영원토록 승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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