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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사회]국민과 노동자를 대하는 국가의 이중성

 

독일 유학시절, 5살이었던 다나가 10대가 될 때까지 베이비시터를 했다. 다나가 10살이 되기 전 어느 날 가방에서 바나나와 콘돔이 나와 지레 혼자 놀라서, 뭐냐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었다. 다나는 태연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다. 당시 성교육을 순결교육으로 대체했던 우리와 매우 대조되는 교육이었다. 이후 다나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0살 이후 어느 날 조별과제라고 보여준 종이를 보며 또 다시 놀라게 되었다. 거기에는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권리 및 노조에 대한 설명 이후 단체협약 사항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것에 대한 조별토론과제가 제시되었다. 토론을 위해 사업장이 처한 상황이 예시로 제시되었다. 이것은 연방정치교육원(Bundeszentrale fur politische Bildung)에서 작성된 자료였다. 중등교육 과정에서 독일의 아이들은 노동자 권리에 대해 배우고, 그 내용의 상당부분은 연방정치교육원 자료에 의존한다. 이곳은 국가가 재정을 지원하되 교육내용에 대해서는 국가가 관여할 수 없으며 철저하게 독립적이다.

2차 대전 중 나치체제에 대해 침묵하고 동의했던 독일인들은 전후 밝혀졌던 전쟁의 참상에 충격을 받았고, 그와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시민들의 민주의식 및 정치참여 제고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1952년 연방정치교육원을 설립한 뒤 민주적인 기본가치가 정치와 사회에 수용될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국민이나 경제발전을 위해 총화 단결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국민을 훈육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가치를 사회와 정치의 민주주의 가치 실현과 유지에 초점을 맞춰 이를 위해 개개인 시민의 소양을 제고할 수 있는 다각적인 교양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개인 시민이 노동자로서 알아야할 권리에 대한 정보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그 결과, 독일인들에게는 노조가 불온한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정부나 정당이 사회적 의제를 형성해 갈 때 중요하게 논의해야할 대상으로 존중한다. 물론 신자유주의 이후 독일 역시도 노동운동의 위기를 겪었지만, 노조의 존재 자체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진주의료원 폐업을 결정한 경남도지사 홍준표는 병원의 적자원인을 강성노조 때문이라고 힐난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4일 서울시 중구청이 새벽에 대한문 앞에서 농성 중이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천막을 10분 만에 기습철거하면서 문화재 앞에 불법시설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홍 지사는 일터를 없애려는 세력에 맞선 노동자들을 불온한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국민으로부터 분리시켰다. 그리고 중구청은 정리해고의 부당함에 맞서다가 국가로부터 중재는커녕 살인적인 진압을 당한 이후 소중한 24명의 생명을 잃은 억울함을 호소해왔던 쌍차 해고노동자와 그들의 연대세력을 시민으로부터 분리시키며 서울의 중심이고자 한다. 그 뒤에서 국가는 팔짱끼고 지켜보고 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국민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든다는 대통령에게 국민은 누구인가?

국민의 대다수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임금을 받거나 소득을 벌고 있다. 이 노동이 근간이 되어야 자본가의 이윤도 발생하고 국가의 세금도 확보된다. 그런데 국가는 일하는 사람인 노동자를 ‘힘을 들여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를 지닌 근로자(勤勞者)로 명명하면서(아이러니하게 관계기관은 고용노동부와 고용노동부장관으로 부른다),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부과했지만 권리는 외면해 왔다. 대한민국의 제도권 교육에서 노동권은 전혀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여전히 국가경쟁력 강화와 모호한 국가 발전을 위해 대다수 노동자가 될 아이들에게 시장자유주의의 미덕만을 가르칠 뿐이다. 그러나 그 아름답다던 시장에서 하루아침에 내던져지는 노동자들에 대해, 그들의 생존권에 대해 국가는 폭력으로 짓밟으면서 국민으로부터 배제시켜 왔다. 노동자가 생존을 위해 노동권을 주장하면 적지 않은 경우 국민에서 박탈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도 자본주의 국가는 유지될 수 있다. 국가가 국민, 근로자 그리고 노동자를 구분할수록 우리 사회 민주주의 가치와 정치는 위험해질 것이다. 결코 행복한 국민은 그 안에서 다수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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