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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일칼럼]링컨 대통령과 우울증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1809~1865)이 얼마 전 상영되었습니다. 암살당하기 전(1865년 4월14일)까지 노예제 철폐를 위한 수정헌법 13조를 공화당이 열세인 하원에서 표결로 통과시키기까지 정치인으로서의 링컨을 그린 영화입니다. 우리에게 링컨은 켄터키의 오지 농촌 통나무집에서 자라, 60만 명의 사상자를 낸 남북전쟁에서의 승리를 거두고, 노예제를 폐지한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공화당이 열세인 하원에서 수정헌법 13조를 통과시키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면서 반대세력을 포섭하는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대 입장을 견지하는 의원들에게 자리를 약속하고 매수하거나, 적대자와 비밀리에 거래하거나 때로는 압박을 가하는 링컨의 모습은 참모들을 당황하게 합니다. 나침반처럼 항상 드높은 이상을 지향했던 링컨에게 실망한 보좌관에게 링컨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나침반은 언제나 서 있는 곳에서 정북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늪지대, 사막, 협곡 등 도중에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가리키지 않지요. 목적지를 향해 가다 장애물을 모르고 거꾸러져 늪에 빠지는 정도밖에 못 이루면 정북을 아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전쟁을 끝내면서 동시에 노예제를 폐지해야 하는 외줄타기 정치 현실에서, 인간의 평등을 헌법으로 보장함으로써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노예제의 부활을 근원부터 차단하기 위해 링컨은 정치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종교는 동기와 과정의 순수성에서 평가받는다면 정치는 결과로서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기와 과정의 비순수성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추구하는 결과가 사익을 위한 것인지 공익을 위한 것인지에 따라 정치적 평가는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링컨은 결과의 공공성에 대한 신념 때문에 인류의 미래에서부터의 평가를 선택했고,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장면의 사이마다 조금씩 비추지만, 링컨은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링컨의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동생은 병에 걸려 죽고, 누나는 시집가서 아기를 낳다가 죽는 등 어린 시절부터 링컨은 죽음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20대 초반에 발병한 우울증은 평생 동안 링컨을 괴롭혔습니다. 젊은 시절의 실연, 정치적 패배, 아들 윌리의 죽음, 아내의 충동적인 소비와 부정부패, 패전과 재선 실패에 대한 공포 등도 링컨의 우울증을 심화시켰습니다. 링컨은 자살충동에 시달려 호주머니에 칼이나 총을 가지고 다닐 수 없었고, 나무에 목매달아 죽고 싶은 충동을 피하기 위해 숲 속을 혼자 산책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링컨의 우울증을 연구한 조슈아 솅크(링컨의 우울증, 이종인 역, 랜덤하우스, 2009)는 링컨이 시와 유머로 우울증을 극복했고, 엄청난 고통을 위대한 힘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라고 평가합니다. 링컨은 우울증을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인생으로 나아가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해석했고, 결과적으로 우울증은 링컨의 원숙한 성품, 사상, 정치인으로서의 공적 행동에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자살을 생각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려면 어떤 목표를 가져야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고, 마침내 그가 발견한 대답, 그것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세상을 자기가 살아온 것보다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감이었습니다. 삶의 덧없음과 절망감이 오히려 그에게 비전의 명확함, 태도의 확고함, 어려운 때를 견디는 인내를 준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고, 우울증이 모든 사람을 위대한 인물로 승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해마다 1억 명 이상이 우울증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2천년에 전 세계적으로 약 100만 명이 자살했는데, 같은 해 전쟁과 범죄로 인해 죽은 사람의 숫자와 맞먹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7년에 248만 건이던 우울증이 2011년에는 344만 건으로 38.9% 증가했다고 합니다. 링컨은 시와 유머로 우울증을 감싸 안았습니다. 우울증을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감싸 안고 자신을 용서했기 때문에 링컨은 위대한 것입니다. 내면의 어둠을 완화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 어둠을 인정하고 끌어안을 때, 우울증은 삶의 파괴자가 아니라 위대한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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