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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사회]메피스토펠레스, 그리고 자본의 덫

 

라면 상무와 빵회장에 이어 주말 내내 욕우유 파문으로 분노한 시민들이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각각의 사건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SNS를 통해 곳곳에 표출되었고,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발 빠르게 대처했다. 포스코와 남양유업은 그들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잘못으로 처리하기 위해 가해자들을 회사에서 쫓아냈다. 프라임베이커리는 매출의 95%를 코레일관광개발을 통해 유통해 왔는데 코레일 측에서 납품중단을 통지 받자 폐업결정을 했다. 회장의 실수로 16명의 종사자들이 실직자가 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기도 했고, 또 일부에서는 권력의 유무로 사회적 관계가 갑을관계로 재편되면서 낳은 병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설명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어째서 한 기업의 임원이 여승무원을 폭행할 수 있고, 회사 상품을 판매해주는 대리점에 폭력적으로 강매와 욕설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회장이란 신분이 뭐라고 지갑으로 50대 종업원을 내리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비단 가해자들의 비정상적인 태도나 성격에서 기인된 문제로 보기엔 너무나 구조와 맞닿아 있다. 우선 욕우유 파문의 경우 가해자인 팀장의 태도는 누가 봐도 문제적이다. 그러나 그가 대리 점주에게 가했던 폭언의 이유가 회사 매출과 관련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중심의 시장 재편으로 이미 골목상권까지 대기업 질서의 수중으로 상당히 접수된 상황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판촉에 대한 경쟁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고, 그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은 담당 업무를 맡은 직원과 대리점이다. 기업은 먹이사슬처럼 짜여 있는 구조를 쥐락펴락하며 배를 불리는 동안, 그것을 위해 경쟁으로 유발되는 고통과 점주들의 손해에 대해 무관심하다. 아마도 문제의 팀장은 가족을 위해 그렇게까지 일했을 것이고, 그것이 회사에서 신임 받고,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지난 4월 발생했던 롯데백화점 판매원의 투신자살과도 비슷한 맥락을 갖는다. 롯데백화점 역시 판매실적 제고를 위해 입점한 매장 담당자에게 백화점 관리사원들은 심각할 정도의 판매 간섭과 폭언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롯데백화점 측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 함구령을 내리는 등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 같다.

포스코의 경우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갑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포스코와 직접적인 거래관계에 놓인 국민은 극히 소수이다. 그러나 그들이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갑으로서의 권력을 용인하고 수용해줘야만 한다는 식의 보이지 않는 권력 그물망은 무엇으로부터 형성된 것일까? 우리는 분명 법 앞의 평등과 천부인권 사상을 교과서로 배워왔다.

그가 아무리 대통령이고 대기업 총수라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갖는 지위는 동일한 것으로 배웠다. 그런데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실질적인 불평등의 기원은 소위 갑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영위하는 권력에 맞설만한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가 너무나 작기 때문이다. 라면상무 사건 이후 대한항공 측은 승객정보보안에 대한 대책을 언급한 반면 자사 종업원에 대한 보호대책은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생산수단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용인에게 그들의 노동력을 판매한다. 즉, 노동자들은 정해진 노동력만 임금을 대가로 교환하면 그만이지만,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은 파우스트의 몸과 영혼까지 탐했던 메피스토펠레스와 같은 탐욕스런 자본을 우리 사회에 배양시켜 왔다. 노동자 내부는 자본의 지휘아래 고위 관리급과 그 이하 다양한 노동층으로 분화되었고, 스스로 자본에 더욱 충성스런 관리층은 그들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고 영혼마저 빼앗길 수 있는 힘없는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노동력만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죽음은 결국 우리를 궁지로까지 몰아넣은 주범들의 탐욕스러운 이윤추구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자본의 덫으로부터 우리가 인간다워지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은 노동권 제고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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