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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납 활자 인쇄기술은 100여년의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 명맥이 끊길 위기에 있다. 조선 후기에 외국 문물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는 근대식 인쇄기계와 납 활자를 수입하기 시작했고, 출판기관인 박문국이 설치된 이후에는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報)’, 농사에 대한 연구서인 ‘농정촬요(農政撮要)’, 순 한글로 된 최초의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서’ 등 다양한 간행물에 쓰였다. 그렇게 근대식 납 활자 인쇄기술은 우리나라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됐다. 사진 인쇄와 오프세트 인쇄 등이 도입되기 전까지. 그런데 사양길의 이 근대 납 활자 인쇄를 복원해 책을 출판하는 곳이 있다. 파주 출판단지 내에 있는 활판공방이 바로 그곳이다. 활판공방 박한수(45) 대표를 만나 납 활자 인쇄를 복원한 계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모은 기계와 영입한 장인

북 디자인을 공부하던 박 대표는 1996년 타이퍼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활자에 대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박 대표와 활자의 첫 인연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그는 기존 책들과 달리 활판으로 만든 책에 매력을 느끼고 옛 활판 인쇄 복원을 마음먹었다. 그리고 서울, 제주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납 활자 인쇄에 필요한 기계들을 모으고 장인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새 기계로 바꿔 옛 기계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장인들 또한 거의 사라져 찾는 데 쉽지 않았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박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존의 책과는 달리 활판으로 만든 책만의 맛이 따로 있다는 그는 현재 5명의 장인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옛것을 너무 쉽게 버리는 것 같아요. 갑자기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듯이 과거 속에서 배울 수 있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통해, 저는 그 속에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는 거예요. 활자가 그렇죠.”

비용도 많이 들고 몸에도 좋지 않을 텐데 그만두고 싶진 않았느냐는 질문에 박 대표는 “사람들은 납이 몸에 안 좋다고 하는데, 만진 손을 입에만 대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또 경제적인 부분은 여기까지 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이제 많은 데서 찾아오고 관심도 가져주니까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단호히 대답했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활판 인쇄가 안타까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는 “인력의 부족함보다는 점점 노령화하니까. 우리는 인력의 숫자문제보다는 숙련된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 이걸 전수, 전승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 중 하나죠”라며 현재의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현재 근대 쪽으로 무형문화재 부분은 지정이 잘 안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국가가 아닌 경기도에서라도 그런 것을 지정해 주면 여기서 일하는 분들도 많이 위안이 될 거예요”라며 자신의 바람을 얘기했다.

‘one of them’이 아닌 ‘only one’으로

활판 인쇄 과정은 주조, 문선, 조판, 인쇄, 제본으로 이뤄진다. 작가의 원고를 받아오면 그때부터 일이 시작된다. 주조는 활자를 만드는 일이다. 활자를 만들고 나면 기술자는 원고를 보고 필요한 활자를 하나하나 뽑는 문선작업을 한다. 그 뽑은 활자로 판을 짜는 조판 단계를 거친 후 인쇄해 제본하면 하나의 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활판공방이 가지고 있는 활자는 서체 세 종류, 크기 일곱 종류다. 공방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이 활자만으로 이근배 시선집 ‘사랑 앞에서는 돌도 운다(2008)’, 김남조 시선집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2009)’, 박목월 시선집 ‘산이 날 에워싸고(2010)’, 미당 서정주 시선집 ‘꽃피는 것 기특해라(2011)’ 등 20여 편의 시선집을 출간했다.

처음 박 대표는 시선집을 1천권씩 출간했지만 2011년 서정주의 시선집부터는 500권으로 줄였다. 이는 희소성이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한정본이라는 것 말고도 공방의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다르다. 시선집의 맨 앞장에는 생존 작가들의 육필이 쓰여 있을 뿐만 아니라 시선집의 내지는 한지로 구성되어 오랜 보존이 가능하다. 만들어진 종이를 사서 쓰는 것이 아닌, 책마다 느낌을 달리해 한지를 맞추는 것이다.

박 대표는 “기존의 책들이 햇빛을 보면 색이 날아가고 종이가 바래는 데 반해 우리가 만든 책들은 한지를 압축시켜 찍기 때문에 변하질 않죠”라고 활판 인쇄로 만든 책의 장점을 설명했다. 200쪽을 기준으로 500권을 만드는 데 드는 기간은 약 2개월이다. 이런 노력에 비례해 공방이 출간한 책은 5만원 정도다.

혹자는 비싸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책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과 노력, 그리고 책의 장점을 생각하면 그리 비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다. 다른 책들보다 다소 비싸긴 하지만, 공방 초기보다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나오는 책마다 구입하는 정기구독자들도 점점 많아졌다.

박 대표는 책의 보급화를 목적으로 한 사람에게 많은 양의 책을 팔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 이는 한 사람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을 방지하고, 여러 사람에게 혜택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박 대표만의 방법이다.
 

 

 


그는 늘 생각한다.

“‘one of them’ 인생을 살지 말자. 즉, 많은 사람들이 찍어내는, 내가 아니더라도 만들 사람이 많은 책들을 만들지 말고 ‘only one’,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책을 만들자.”

박물관을 목표로 하는 활판공방

박 대표는 시집에서 더 나아가 단편소설과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까지 출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일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공방 자체를 박물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공방은 책 판매와 함께 교육 프로그램 및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더불어 파주시에서도 활판공방에 박물관 신청을 권유하고 있다. 기존 공방이 작아 박물관이 되면 다른 장소로 옮겨야하지만, 박 대표는 2년 내로 공방이 박물관이 될 수 있게끔 노력할 예정이다.

그의 일은 활판 인쇄만이 아니다. 활판 인쇄 이전부터 박물관 도록을 만들었고, 아직까지도 매년 도록을 만들어 부족한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다. 또 3년 전부터는 옛날 책을 복원하는 데 관심을 갖고 목판 인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옛 인쇄방식을 연구하고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박 대표의 바람은 지금보다 더 좋은 ‘명품’ 책을 만드는 것이다.

사진 │ 이준성 기자 oldpic316@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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