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7 (금)

  • 맑음동두천 20.8℃
  • 구름조금강릉 24.6℃
  • 맑음서울 22.3℃
  • 맑음대전 22.8℃
  • 맑음대구 24.1℃
  • 맑음울산 21.7℃
  • 맑음광주 21.1℃
  • 구름조금부산 19.1℃
  • 맑음고창 ℃
  • 구름조금제주 20.5℃
  • 맑음강화 17.3℃
  • 맑음보은 21.6℃
  • 맑음금산 21.9℃
  • 맑음강진군 20.0℃
  • 맑음경주시 23.2℃
  • 맑음거제 18.5℃
기상청 제공

[시민과사회]노사정 대타협의 모순(矛盾)

 

모순(矛盾)은 중국 초나라의 상인이 창과 방패를 팔면서, 어떤 방패로도 막지 못하는 창과 어떤 창으로도 뚫지 못하는 방패라는 앞뒤가 맞지 않은 말에서 유래되었다. 개인과 사회가 이러한 모순을 사용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개인의 경우 초나라 상인처럼 개인 이윤만을 추구할 때 이처럼 모순마케팅을 활용한다. 그런데 모순의 활용법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면 보다 복잡해진다. 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그로 인해 득을 얻는 계층의 이해가 보존되고 확대시키기 위해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작동하게 된다. 지난달 29일 소위 ‘노사정 일자리 협약’으로 내놓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대표적인 모순의 용례이다.

박근혜 정부 100일을 앞두고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협약은 현 정부의 노동에 대한 무관심과 무능력을 그대로 보여줬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계속적으로 확대된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이제 우리의 소원은 통일에서 정규직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고용의 형태나 노동 조건을 노동자 개인이 선택하거나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2013년 3월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임금노동자수는 1천774만3천명으로, 이중 정규직은 1천201만2천명, 비정규직은 573만2천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은 32.3%로 나타났다. 3개월간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이 253만3천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2% 증가한 반면, 비정규직의 임금은 141만2천원으로 1.4% 감소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월평균 임금격차는 112만1천원으로 2004년 이후 가장 큰 격차를 보였다. 비정규직 중 계약직이나 임시직 같은 한시적 노동자가 333만1천명, 파견·용역·특수고용직 등 비전형 노동자도 220만8천명이다. 시간제는 175만7천명으로 비정규직의 30.6% 수준이고, 전체 임금노동자의 9.9%에 이른다. 특히 여성과 고령층에 집중되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시간제 노동자는 50대에서 21%, 60세 이상에서 60%로 증가했고, 남성 시간제 노동자는 47만3천명으로 2%, 여성은 128만5천명으로 54%나 급증했다. 비정규직 10명 중 3명이 시간제 노동자이고 이들의 1~3월 평균임금은 65만1천원으로 비정규직 평균 임금 143만2천원의 절반 수준, 정규직 임금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더욱이 시간제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국민연금 13.9%, 건강보험 17.2%, 고용보험 16.3%로 매우 저조할 뿐만 아니라 노조가입률은 0.4%에 불과했다. 즉 이미 전체 임금노동의 10%에 이르는 시간제 노동은 고용의 안정성과 질 모두에서 불평등과 불안정성이 심각하고, 이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대표체조차도 형성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정부는 ‘시간제 노동’이 단지 인식 차원에서 변화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시간제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임금비용 및 노동권 축소로 귀결된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이며, 이것은 노동현장의 사실적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고용안정, 불합리한 차별 폐지, 기본적 근로조건 보장이 전제된다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확보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공공부문,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중심으로 확대시켜갈 계획을 세웠다.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4명이 과중한 업무로 세상을 떴고, 2007년 이후 양적으로 팽창한 사회서비스 일자리는 중장년 여성의 주요 일자리로 부각됐지만, 임금수준 및 노동조건 등 계속되는 노동문제 중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않고 지금까지 흘러왔다.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고, 이미 부각된 시간제 일자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제시되지 않은 채 빈 껍데기 구호만으로는 결코 ‘양 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달성될 수 없다. 오히려 1천만 비정규 노동자, 특히 여성노동자의 노동선택권은 더욱 위축될 것이고,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꿈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비정규노동 확대에 합의한 한국노총 지도부가 대표하는 노동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노동자 그 누구에게도 동의 받기 어려운 노사정대타협은 노동자 모두를 배제한 채 말만으로 달성한 대타협으로 그 자체가 모순이다. 합의서에 조인한 주체들부터 당신들의 일자리를 시간제로 쪼개보시길…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지 먼저 해보시길….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