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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시인(고려대 교수)

 

‘방과 후 책가방/도시락 통 속에서 동무 삼아 같이 걷던 숟가락 소리,/강아지 꼬랑지 달린 논둑길,/봄물 가득 끌어 올리던, 논두렁 흙냄새’(최동호 시 ‘남창초등학교’ 全文)

그가 돌아왔다. 자신의 시에서 오롯이 묻어나는 그리움 가득한 유년의 숲, 수원으로.

한국 문단의 거목(巨木), 최동호(65) 시인.

올해 1학기로 25년 동안 인연을 맺었던 고려대학교에서 정년을 맞는 시인이 태(胎)를 묻은 고향, 수원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1960년 수원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부친을 따라 목포로 전학했으니 53년만의 귀향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6월 21일 아직(?) 재직 중이었던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에게서 연어 내음이 났다. 회귀성 어류인 연어는 강원도 양양 남대천을 떠나 캄차카 반도와 베링해를 지나 북태평양에서 자라다 고향인 강원도 양양 남대천으로 돌아오기까지 4년 동안 4만5천여㎞의 긴 여행을 마친다.

고향을 떠난 후 53년 동안 시인은 얼마나 긴 영혼의 거리를 헤엄친 것일까.

1966년 2월 서울 양정고를 졸업한 후 조지훈 시인이 후학을 가르치던 고려대 국문학과에 입학, 석·박사를 마치고 한국국악예술학교 교사, 경남대·경희대·고려대에서 후학의 모범으로 살며 정년에 이르기까지 어디 순항(順航)만 있었을까. ‘말 많고 탈 많다’는 한국 문단과 대학 강단에서, 설마. 그런데 희한하다. 시인의 얼굴에는 그늘을 찾을 수 없다. 세파(世波)를 달(達)하고 관(觀)한 마음이 빚어낸 ‘그 무엇(et was)’이다. 얼굴은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던가. 시인의 얼굴은 심연(深淵)의 바다를 닮았다. 세상 모든 강줄기를 담고도 미동조차 않는 바다. 그 ‘바다얼굴(海顔)’의 백미(白眉)는 눈매다. 암하노불(岩下老佛)이거나 선승(禪僧)의 그것처럼 ‘오직 선(善)함’만이 묻어나는.

시인의 마음이 빚어낸 얼굴의 원형(原形)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고향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시 ‘남창초등학교’에 잘 묻어난다. 이 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추억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자연스레 현재와 겹친다. 마음의 끈이 53년 대장정 세월동안 단 한번도 고향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특히 첫 문장을 주목한다. ‘방과 후 책가방’.

마음을 모으고 이 문장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책가방 위로 번지는 해거름이 보이고 ‘해는 져라, 나는 논다 정신(?’)으로 똘똘 뭉친 어린이들의 깔깔거림과 바쁜 발걸음이 즐겁다. 그 위로 별빛처럼 아스라이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원형의 소리. 소리가 시인을 낳고 시인은 세상의 울림이 됐다. 그 진동이 한국 문단의 바다에 생명을 낳았다.

시인은 50여 년 전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다고 했다. 해질녘까지 뛰놀던 학교 운동장이며 골목길, 그리고 언제나 등 뒤에서 부르던 ‘엄마 목소리’까지. 이처럼 시인에게 고향은 자궁의 안과 밖이 다르지 않다. 산사(山寺)의 불이문(不二門)처럼. 시인이 ‘이제는 돌아와 고향 앞에 선’ 까닭이기도 하다.

시인은 급하게 또는 찬찬히 회귀를 준비했다. 시인은 태를 묻은 수원 남창동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수원 남창동 최동호 시창작교실’을 열었다.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는 이 행위는 고향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 어떤 선지자가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뜻을 펼쳤는가, 없다. 부처도 예수도 마호메트도 타향에서 의지를 펼쳤을 뿐이다, 왜? 털렁거리며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을 온전히 기억하는 사람들 앞에서 근엄함을 보이는 것 자체가 악수(惡手)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인(聖人)들은 신의 대리인이지만 시인은 신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악기이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오기’가 가능한지도 모른다. 고향에 돌아와 고향 사람들에게 시를 가르치며 함께 즐기는 것. 시인이 열어가는 인생의 2막이다.

귀향의 결기가 느껴지는 시는 이렇다.

‘검의 집에서 일단 검을 뽑으면 그것은 검이 아니라 칼이다./낡은 제 집을 지키고 있는 검이야말로 천하의 명검이다./무딘 쇠의 날을 세우고,/세상을 향해 칼을 휘두르면 검의 정신은 녹이 슬고/검은 피 묻은 쇳조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검은 살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검은 살생을 막고 세상의 혼돈을 진정시키기 위해/존재하는 것이므로 섣불리 검의 날을 세우고 나면/반드시 그 날카로움에 사람이 다치게 된다.//제 집을 지키고 있는 검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세상을 움직이며 끝내 태산을 울게 하는 이치를/터득한 사람만이 검을 뽑지 않아도 검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그 사람에게는 검이 필요 없다./그래도 검을 앞에 놓고 부드러운 덕을 닦으며/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은 함부로 검을 뽑지 않기 위함이다.//날카로운 검을 구하는 사람에게 세속의 길이 아니라/명검의 길을 이야기하는 것은 낡은 집 속의 검은/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태산을 울게 하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지니고 있다는 것을 전해주기 위해서이다.’(최동호 ‘명검’ 全文)

마음 급한 시인은 이미 지난해 ‘수원 남창동 최동호 시창작교실’ 제1기 수강생을 배출했다. 이어 지난 3월부터 진행된 제2기 시창작 교실도 6월 10일 수료식을 마쳤다. 12주 과정이다. 40명 가운데 37명이 수료했다. 이순(耳順)을 넘긴 수강생들이 대부분이다. 두번 결석이면 제명되는 엄격한 규율 속에서 수강생들을 마지막까지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 시에 대한 갈급과 열정이 제일 앞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향 수원을 문학의 숲으로 가꾸려는 시인의 진심이 수강생들의 가슴과 통(通)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기 수료식에서 만난 수강생들의 천진난만한 모습들과 그를 지켜보는 시인의 그윽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이어진 뒤풀이에서 수강생들이 쏟아내던 존경의 마음은 더더욱.

시인의 문학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배 시인 두 명이 있다. 조지훈과 정지용이다. 시인은 퇴임 직전까지 조지훈 시인, 아니 스승의 연구실을 지켰다. 고려대 교정에 조지훈 시비를 세운 일화는 이제 전설이 됐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관철해낸 그의 뚝심에서 ‘최씨 고집’이 보인다는 것이 주변의 증언이다. 스승 조지훈 시인에 대한 예의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시인은 35년 동안 100여명의 문인과 학자들을 발굴하고 길러냈다. 정일근, 정호승, 박덕규, 이문재, 김종회, 하응백, 권혁웅, 오형엽, 맹문재, 문태준, 신철규, 권성훈, 이찬 등이 그들이다.

이처럼 많은 한국 문단의 별들을 길러낸 배경에는 시인의 스승, 조지훈 선생이 있었다. 시인의 육성을 통해 알아보자.

“조지훈 선생님께 시를 배우기 위해 고려대 국문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 제가 3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제가 66학번이었는데 68년도에 작고하셨으니까요. 스승을 잃은 허탈감은 문학청년인 제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극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스승이 되면 제자들을 외롭게 하는 일은 하지 말자. 그래서 제자 양성에 더 몰두했는지 모릅니다.”

시인은 또 정지용 시인에 대한 집념의 연구가로 손꼽힌다. 정지용 시인 한 사람에 대해서만 30년에 걸쳐 15편의 논문을 썼다. ‘정지용의 생애와 문학’, ‘정지용 시와 비평의 고고학’, ‘정지용 사전’ 등을 통해 그를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자리에 올렸다. 정지영 연구 최고 연구자로 손꼽히는 이유다.
 

 

 


말보다 실천.

시인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조계종 제3교구 조실인 무산 오현 스님,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이상수·최광식 전 장관, 신달자 한국시인협회장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이 자신들의 가장 옆자리에 시인의 이름을 올려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속 깊은 사람들은 안다. 시인이 걸어온 위대한 길이 부인, 김구슬 교수(협성대 대학원장)가 있어 가능했고, 하다는 것을. 문학적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로 영혼이 따뜻한 날들이거나 모진 시련의 세월이거나 한결같은 지원, 그에 대한 시인의 감사와 존경은 후학들의 모범이다.

수원에서 문학의 숲을 가꿔갈 시인의 또 다른 시작은 시향(詩香)을 맡으며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달뜨게 한다. 단언컨대, 시인의 귀향은 수원의 복이다.

지난 6월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 호텔에서 ‘최동호 교수 정년기념 문집-치인(痴人)의 숲과 바람의 씨눈-봉정식’이 열렸다. 치인은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란 뜻으로 무산 오현 스님이 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에게 지어준 아호다.

문집 1부에는 등단 시인들의 대표시와 신작시, 2부에는 최동호 교수의 시에 대한 감상과 개인적 인연을 담은 에세이를 실었다.

이날 자신을 시인의 첫 제자라고 소개한 정일근 시인의 헌시 ‘그분-최동호 은사께’ 전문으로 글을 닫는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가르쳐주신 그분/내가 한 알의 붉은 유정란이었을 때/증오와 고통, 우울과 방황, 역사와 시대의 혼돈 속에서/내 어린 부리로 알을 깨고 나올 그곳,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나를 따뜻하게 품어 주신 그분//수평의 바다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신 그분/내가 가는 곳 모르는 요란한 물소리였을 때/모든 물은 강으로 가고, 강은 다시 바다로 간다고/제 소리에 우쭐거리지 말고 바다를 향해 가라고/나를 번쩍 깨우신 그분//하늘로 나는 날갯짓을 가르쳐 주신 그분/세상사는 일이 날기 위한 날개만 필요한 것 아니라/둥지로 돌아오기 위한 날개도 필요한 법이라고/때로는 날갯짓 없이 바람 타고 유유히 날 줄 알아야 한다고/나에게 자유의 날개를 달아 준 그분//나는 어리석어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세월을 살다/나는 욕심 많아 득룡망촉(得朧望蜀)의 꿈을 꾸다/시의 준령 단숨에 넘다 날개 꺾인 풍찬노숙의 세월을 살며/안맹의 눈으로 더듬더듬 서정시를 읽을 때/나에게 시의 길을 되짚어 주신 그분//그리하여 나무로 사는 인생을 가르쳐 주신 그분/꽃이 아름다워도 열매를 위해 피고/열매가 달아도 씨앗을 위해 맺히듯/나무로 사는 것이 제 생명 키우는 것이라고/나에게 나무가 되라고 가르쳐 주신 그분//상벽(常碧) 상청(常靑)의 큰 나무로 내 앞에 서 계신 그분/나에게 살아 있는 길인 그분.’

글 │ 최정용 기자 wesper@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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