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은 생을 살다가 요절한 수필가 전혜린(田惠麟·1934~1965). 그는 독일 뮌헨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21살 때인 1955년, 서울법대 3학년을 다니다 뮌헨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4년 남짓 독일에서 생활했지만, 그 기간 치열한 삶에 대한 열정을 가장 많이 배우고 접했기 때문이다.
경기여중·고를 나온 그는 대학입학시험에서 수학 시험지를 백지로 냈다. 그러나 다른 과목 성적이 워낙 출중해 법대에 합격할 만큼 천재 소릴 들었다. 대학 입학 후 법학보다는 문학에 더 관심을 가졌다. 장래 목표도 법조인이 아니라 문인으로 바꿨다. 유학을 가면서 독문학과를 선택한 것도 이 같은 연유다.
뮌헨은 그에게 인생의 전환기도 제공했다. 법학도 유학생 김철수와의 결혼, 딸 정화의 출산 등. 이 시기는 법관이 되라는 법률가 아버지의 요구를 피해 도피성격으로 독일에 간 이후 모처럼 평온과 행복감을 찾은 시기이기도 했다. 그곳 예술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전개했다. 당시 뮌헨 문인들이 많이 찾던 카페 제로제(Seerose)에도 자주 나가 삶과 고뇌, 인생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그는 거기서도 인정받는 수재로 통했다.
59년 뮌헨대학을 졸업 후 귀국, 서울대 강사와 성균관대 조교수로 있으면서 ‘생의 한가운데’ ‘데미안’ 등의 독일 문학작품을 번역했고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갈망했던 그에게 한국의 현실은 독일과는 달랐다. 이혼, 젊은 제자와의 사랑 실패 등 불행도 찾아왔다. 고통을 견지지 못한 그는 결국 1965년 서른두 살 나이에 스스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의 고뇌와 치열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유고집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다음해인 1966년 출간됐고, 50여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읽히고 있다.
내일 저녁(17일 현지시간) 전혜린이 유학했던 독일 뮌헨에서 독일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 낭송회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낭송회의 주체는 1948년 결성된 뮌헨 문인, 화가들의 모임인 제로젠크라이스(Seerosenkreis)라고 한다. 당시 카페 제로제(Seerose)에 드나들던 예술가들로 구성된 모임이기도 하다. 국적을 떠나 문학을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