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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사회]잘못된 공약, 누가 판단하는 것인가?

 

지난 17일 국민행복연금위원회는 4개월간 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기초연금 도입방향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합의문을 두고 크게 상반되는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잘못된 공약은 수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입장과 대통령 선거공약을 파기하기 위한 합의문에 불과하다는 입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전자는 제도의 최우선 조건으로 재정적인 요소에 주목했다면, 후자는 심각한 한국의 노인빈곤문제에 대한 긴급한 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나의 제도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입장의 대립은 복잡한 현대 사회의 특징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공약’의 잘잘못을 누가 판단하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공약이행사항으로 밀어붙여 결국 재임기간 내내 수행했다. 당시에 시민사회는 이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내세워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공약이기 때문에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국가재정적인 측면에서도 2012년 말까지 22조원이 투입되었지만, SOC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는 매우 미미할 뿐만 아니라, 각종 비리사건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 정권은 4대강 효과에 대해 두고 봐야 한다고 떼를 썼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녹차라떼와 곳곳에 수리가 필요한 흉측한 건축물과 환경훼손 등이다. 많은 우려를 뒤로하고 강행됐던 공약사항은 결국 애물단지가 되어 국민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정권은 시민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일방통행 했다. 그런데 기초연금을 두고 벌이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마치 사회적인 의견을 수렴하는 듯 보이지만 실체에 있어서는 정부의 일방통행이라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작년 겨울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자는 ‘65세 이상 전체 노인에게 20만원(국민연금 균등부분인 A값)’을 기초연금으로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두고 대선TV토론에서 상대후보가 재정적인 여건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이에 대해 이미 모든 것을 검토한 결과 충분히 가능하다고 확언했다. 그러나 그 확언은 오래가지 못했다. 당선 이후 인수위 시기부터 기초연금에 대한 재정적인 문제가 부각되면서 전체 노인에게 지급하는 것이 적당한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는 것이 바람직한지, 국민연금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가 국민으로부터가 아닌 정권 및 정부관계자들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인수위는 국정과제 중 하나로 기초연금 도입을 논의하는 행복연금위원회 설치를 주문했고, 정부는 행복연금위원회를 통해 기초연금의 방향을 구체화했다.

합의문에서는 기초연금의 방향을 공약시기 약속됐던 보편적 수당으로써의 제도방향은 배제한 채, 네 가지 합의와 대립적 요소의 제도방향을 제시했다. 우선 합의된 네 가지는 기초연금의 재원은 조세로 할 것, 명칭은 행복연금이 아닌 기초연금으로 할 것, 기초연금 도입으로 국민연금제도 발전과 노인복지 향상에 기여하도록 노력할 것, 그리고 제도 시행일을 2014년 7월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외 세 가지 사항은 대립적인 제도설계 요소를 병렬적으로 제시했다. 대상자 기준을 소득 또는 인구 기준으로 노인의 70% 또는 80% 수준으로 한다는 조건에서 이미 4가지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이외 급여를 정액 또는 차등지급하고, 차등지급의 경우 소득인정액 또는 공적연금액으로 한다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총 12가지 경우의 수가 발생하는데, 이 복수안을 두고 최종적으로 정부가 결정하게 된다. 최상의 조합으로 제도가 설계되더라도 이미 공약수행은 불가능하며, 재정적인 요소를 공약 파기하기 위한 면죄부로 활용하는 정부 환경에서 노인빈곤 완화효과를 위한 혁신적인 제도설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경제적 환경과 사회문제는 작년 12월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선과정에서 경쟁적으로 국가복지에 대한 공약이 약속된 이유는 그만큼 한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고달프고, 국가가 더 이상 국민의 고달픔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너무나 쉽게 국민과의 약속을 깼고, 사회복지를 통한 국민적 화합이 아니라 분열을 초래시키고 있다. 반대가 많았던 과거 정부의 공약은 수행됐고 국민의 상당수가 기대했던 공약은 폐기되는 현실 앞에서 민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우리사회 민주주의는 이대로 괜찮은지 되짚어 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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