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유년의 첫사랑, 그 아름다운 날
[사람과 사람]유년의 첫사랑, 그 아름다운 날
  • 경기신문
  • 승인 2013.08.1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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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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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두 시인·시나리오작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첫사랑은 있다. 필자도 사십 년이 지난 일을 문득문득 기억하게 된다. 필자의 고향 해남의 바닷가는 사라진 지 오래다. 만수가 차면 바닷물이 필자의 집 마당을 채웠고, 벗어놓은 신발들이 바다로 떠내려가곤 했다. 문저리와 낙지를 잡은 작은 목선은 마당 앞까지 들어와 만수까지는 바다로 다시 나가지 못하고 마당을 지켰다.

그을린 소금과 염분들이 떠나지 않았던 고향집, 목포에서 유학 생활을 한 필자는 주일만 되면 한 시간 반가량 목선 백마호 혹은 조양호를 타고 목포 앞바다를 건너 상공리 부두에 내려 다시 40분간 황톳길을 달려 산이면 덕호리에 하차했다. 늦은 밤, 산비탈을 몇 개 지나 이름 모를 묘지 앞을 불빛 하나만 바라보고 희미한 위로를 받으며 걷다 보면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는 너무 어렸기에 첫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 그때가 첫사랑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된 것은 성년이 되어도 기억에 떠나지 않은 추억을 감지하고 나서야 그랬다. 동네어귀를 지나 친구네 집 앞을 서성이다 아침까지 기다린 적도 있고, 밤새워 모랫길 언덕배기에 바람을 등지고 서 있던 적도 있었고, 용남샘과 그루터기 나무도 첫사랑의 공간이었다.

추석과 명절이면 소여물을 쑤는 방에서 고구마 벽에 기대어 아침을 보내거나, 친구들과 잠을 자기도 했고, 화투놀이로 라면 내기도 했다. 그 라면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원 웨이 티켓’ 등 흥에 겨운 팝송 음반을 구해 몇 번이고 들으면서, 온돌인 작은방에서 어르신들의 눈을 피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로 얼굴만 봐도 흥에 겨워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옛날, 그 친구는 도시 아이들처럼 참 고왔고 아름다웠다. 늘 청바지에 블라우스를 입고 재킷을 걸친 그였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 동네 어르신들은 꾸중할 만도 했지만 모두 눈감아주셨다.

세월이 지나, 친구들 몇은 연락이 되었지만 아예 연락이 끊긴 친구도 있고 동네가 썰렁해졌다. 친구들이 대부분 고향을 떠났기 때문이다. 직장을 얻고 결혼도 하고, 이런저런 삶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고향마을에 가면 꼭 친구네 집 주변을 돌아보며, 내 첫사랑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싶었다. 친구의 오빠는 늘 집을 서성이며 지나가는 내 모습을 자주 목도했고, 그때마다 몹시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필자는 굴하지 않고 그의 집 앞을 서성였다. 혹시나 그 친구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우리의 사랑이 지속되지 못한 건 그가 고등학교를 서울로 갔기 때문이다. 그간 그는 더 예뻐졌고 세련되었다. 초라한 내 모습을 떠올리니 도저히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먼발치로 그의 모습을 보면서 통곡한 밤이 한두 해 지나가면서 어른이 되었다. 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던 추억의 시간들, 우리는 손 한 번 잡지 못하고 서른이 되어서야 해후했다.

하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시간은 다시 흘러갔고, 이십 년이 지난 후 그와 필자는 다시 해후했다. 자신의 동창생을 통해 필자의 소식과 연락처를 접한 그는 많은 고민을 하며 전화를 걸어왔다.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우리는 가벼운 악수를 했고 짧은 시간 동안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노래도 불렀다. 유년 시절에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려서 그 음을 찾을 수 없었다. 평소에 애창한 노래를 몇 곡 부르고 헤어졌다.

그간 그는 밤을 새워 필자의 글을 읽어왔다고 했다. 그는 필자에게 ‘자신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잘살아줘 고맙다’는 짧은 문자를 보냈다. 가슴이 먹먹해진 필자는 알 수 없는 눈물들이 맺혔다. 그는 필자보다 더 잘살아주었다. 독실한 신앙으로 자기관리를 해왔고, 늘 건강을 염려해온 터라 다행히 건강했다. 고향마을에 살던 그의 오빠는 이미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떠났고, 그의 올케언니만 고향집 근처에 살고 계신다고 한다. 그의 동생들과 형님 내외분께 몇 번 그의 소식을 묻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는 못했다.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예전에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어쩌면 그가 이 세상에 없을 거라는 소식을 들을까봐 두려워서 차마 물어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유년의 첫사랑과 해후하던 날, 그 아름답던 날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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