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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형사 서피코

 

알파치노가 주인공으로 나온 <대부>, <여인의 향기> 등 대부분의 영화들은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알 파치노가 뉴욕경찰 ‘프랭크 서피코’로 나오는 1973년도 영화 <형사 서피코>의 대중적 인기는 다른 영화들에 못 미쳤지만, 알 파치노의 명연기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했다. <전당포>, <침묵의 살인> 등 사회적 이슈를 영화의 테마로 삼아온 시드니 루멧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1972년 6월 가장 용감한 경찰에게 주는 공로훈장을 받고 은퇴한 ‘프랭크 서피코’의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1960년대 뉴욕경찰(NYPD)의 어두운 뒷모습과 당시 미국의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프랭크는 배달되어 온 ‘돈 봉투’를 거절하고, 동료 경찰의 부패상을 상부에 알리지만, 돌아온 메시지는 “적당히 하라”는 회유와 집단 따돌림뿐이었다. 결국 신문사에 고발하게 되고, 외부의 힘에 의해 경찰 내부의 부패를 척결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지만, 정작 본인은 마약반 동료들로부터 보복성 총격을 받게 되고 목숨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인다. 작고 다부진 알 파치노가 30대 초반의 매끈한 젊음을 드러내고 히피 스타일로 위장하고 근무하는 모습도 멋있었지만, 경찰 내부의 비리를 들춰내는 ‘내부 고발자’로서의 고뇌에 찬 모습을 연기하는 장면이 더 인상 깊었다. 뉴욕경찰은 ‘프랭크 서피코’의 뉴욕타임즈 고발을 계기로 뼈를 깎는 내부 혁신을 실천했으며, 뉴욕시민들의 경찰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형사 서피코>에 나왔던 장면들과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첫 번째 장면은 경찰과 관련된 것이다. 경찰 수뇌부의 수사 축소 움직임에 대해 경찰서 수사과장이 반발하고, 그 실상을 국회 청문회에서 있는 그대로 증언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어느 조직이건 상부 지시에 순응하는 것이 조직원으로서 마땅한 도리라고 알려져 있으며, 상명하복의 전통적 분위기가 매우 강한 한국에서는 더욱더 웃분들의 하명을 거스르기 어렵다. 문제는 조직 수뇌부의 지시가 사회적 통념에 벗어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법률에 위반될 경우에 발생한다. 보통의 소시민들은 적당히 타협하라는 유혹에 대부분 넘어가게 마련이다. 용기 있는 몇몇 내부고발자들이 공공기관과 공무원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본인 스스로는 내부고발이라는 어려운 선택 이후에 각양각색의 위협과 집단 따돌림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한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격려하는 다양한 제도가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내부고발이 활발하지 않은 것 역시 그와 같은 본인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이다.

또 하나의 장면은 공공기관과 관련된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과 관리, 운영을 책임지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원전 수주를 둘러싼 검은 돈들이 오갔으며, 경쟁력 없는 원전 부품을 사용하게 되었다. 소수의 담합과 묵인, 그리고 검은 뒷거래는 원전의 잦은 고장으로 연결되었고, 그에 따른 전력 부족으로 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무더위에 땀을 흘렸다. 그러나 한수원에서 내부고발은 없었다. 내부고발 대신 끼리끼리 묵인하고 서로 눈감았다. 현금 봉투가 입을 막았고, 기름진 식사와 화려한 술상이 눈을 가렸다. 만약, 한수원에서도 일찍이 내부고발이 있었다면, 원전 가동이 중단되고 한여름에 수많은 국민들이 더위로 고생하는 사태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어이 대형 사고가 일어나야만 그 이면의 부정부패가 드러난다면 아프리카의 후진국이나 대한민국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투명성 지수는 OECD 회원국들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2011년 현재 OECD 회원국의 투명성 지수를 비교해 보면 전체 평균이 10점 만점에 6.9점이지만, 대한민국은 5.4점에 불과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투명성 지수가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되기만 해도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부고발에 대해 칭찬하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내부고발로 인해 일시적으로 그 조직이 고생하겠지만, 길게 보면 결국 조직을 살리고 오래 존속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야 사회가 투명해지고, 경제성장률도 우리의 잠재력 수준으로 높아지고, 결국에는 주변국들이 존경하고 인정하는 제대로 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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