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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맥간공예연구원장

 

새로운 분야의 길을 여는 사람들은 남다르다.

어떤 이도 걷지 않던 길을 홀로 개척해 나가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고통의 시간을 의지와 도전 정신으로 이겨 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일반 사람들 눈에 무모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더욱 윤택하고 편리해진다.

지난달 9일 보리사모회와 맥간아트&아카데미가 마련한 맥간공예 특별전 ‘보리향기 나눔전’에서 만난 이상수(55) 맥간공예연구원장은 이처럼 새 분야의 지평을 열고 있는 인물이다.

이 원장은 밀짚이나 보릿짚의 줄기인 맥간(麥稈)을 이용해 구현하는 공예예술인 ‘맥간공예(麥稈工藝)’ 창시자로, 이 분야를 널리 보급하고 활성화하는 작업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의 맥간과 금박예술이 세계 최고임을 꼭 증명해 보이겠다”며 의지를 다지는 그를 수원 영동 아트포라 내 갤러리 아라에서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맥간공예의 대한 견해 등을 들어봤다.

◇ 부모와의 사별 후 어두웠던 시절... 그리고 맥간과의 만남

1958년 경남 밀양에서 부농의 2남2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난 이 원장은 초등학교 1학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부친을 여읜 후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마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형제들과도 뿔뿔히 흩어지면서 그는 걷잡을 수 없는 방황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그에게 있어 10대 시절은 고통의 순간이었다.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들은 그를 더욱 깊은 방황으로 들어서게 했고, 급기야 세상에 대한 적대심으로 바뀌어 갔다.

“조금의 시비거리만 있으면 남들과 싸우기 일쑤였죠. 나보다 싸움을 잘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그를 꺾기 위해 무술교본을 독파하고, 샌드백을 두드리며 몸을 단련시킬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가까워 질 수 없는 건 불보듯 뻔했죠.”

이러한 그에게도 놓고 싶지 않던 것이 바로 화가의 꿈이었다. 그는 한 번 본 풍경이나 사물을 도화지에 옮겨 그릴 수 있는 재주가 있던 탓에 어린 시절 미술과 관련된 상도 곧잘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가세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그의 꿈은 ‘이룰 수 없는 환상’에 불과했다.

‘화가의 꿈을 이룰 수 없다면 남들이 하지 않은 독특한 방법으로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한 그는 1977년 20세가 되던 해, 스님이 돼 돌아온 형을 만난다.그는 경북 청도 동문사로 들어가 탱화를 그리며 새 삶을 살 것을 권유한 형의 말을 따라 동문사에 기거하게 되고, 그 곳에서 인생의 전환점이 된 맥간을 접하게 된다.

“동문사로 들어가기 전 금박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어요. 현재 금박작품에 쓰이는 재료가 당시엔 없었기 때문에 시골노인들이 사용하던 담뱃갑에서 금·은박지를 분리해 줄을 그어 결을 내 만드는 작품을 구상했었죠. 6·25 전쟁 때 피난길을 떠난 이중섭 화백이 도화지 대신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그는 동문사 주변 마을에서 보리를 베어 반듯하게 단을 만들어 산비탈에 쌓아 놓은 모습을 보고, 어려서부터 마을 어른들이 보릿대를 이용해 모자나 반짇고리, 돗자리 등을 만들던 일을 떠올리면서 보릿대를 이용한 예술작품을 만들자는 의지를 굳혔다.

낮에는 맥간을 연구하고 밤에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렇게 3년 가까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보리 빛깔과 질감이 살아있는 폭 1m, 길이 2m 크기의 보릿대 종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 맥간공예의 탄생... 수원에 뿌리를 내리다

이 원장은 1983년 종이 제조기법에 대한 실용신안을 신청, 첫 허가를 받은 후에도 종이에 염색 없이 전통 5색(빨·주·노·초·파)이 보릿대에 스밀 수 있는 기법, 무지갯빛 필름지(레인보우)를 이용한 장식판 기술 등 모두 7종의 실용신안 등록을 마쳤다.

빛을 머금은 보릿대가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맥간공예’는 이처럼 그를 통해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맥간공예는 언뜻 보면 자개공예와 비슷한 듯하지만 보릿대의 부드러움과 유연한 빛깔은 자개에 비할 수 없다.

맥간공예는 보릿대를 쪼개 한 쪽 면을 도안에 따라 오려붙이고 표면에 옻칠을 입히는 독특한 기법을 통해 만들어진다. 빛의 각도, 결의 방향에 따라 입체감이 살아나며 그 아름다움은 생활에 품격을 높여주고 활력을 주기도 한다.

이 원장은 맥간공예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1986년 수원 팔달문 인근 20여평 규모의 ‘선화랑’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전시회가 끝나기 전 작품 모두 팔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듬해 서울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의 두 번째 전시회, 1988년 KBS 부산지국 신관개관기념 초대전시회 등 지금까지 모두 8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맥간공예의 아름다움을 많은 이들에게 전파했다.

1989년부터는 삼성전자에서 동호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통해 맥간공예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1991년 꽃을 피웠다. 그의 문하생들이 모여 맥간공예를 연구하는 ‘예맥회’를 결성, 수원을 중심으로 맥간공예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현재 40여명으로 구성된 예맥회는 삼성전자 동호회에서 만났던 그의 수제자이자 맥간공예 작가로 활동 중인 이수진(40) 씨가 이끌고 있다.

2003년 국제서화예술명인과 경기도 으뜸이 선정, 2011년 아세아미술초대전 대상,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수여하는 제30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을 수상한 그는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맥간공예의 창시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맥간공예 국내를 넘어 해외로 알릴 터

이상수 원장의 호는 ‘백송(白松)’이다. 고향의 한 지인이 추천해 줬다고 한다.

사계절 푸른 소나무, 그 중 줄기가 흰색과 회색이 섞여 있는 흰 소나무는 그의 고향인 경남 밀양의 천연기념물로, 그 지방의 토양이 아니면 잘 자라지 않는다. 맥간공예에 대한 그의 곧은 절개와 의지와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이 원장은 국내를 넘어 일본, 중국 등 맥간공예의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재료도 맥간뿐 아니라 금박, 레인보우를 이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이러한 취지에서다.

“맥간공예의 해외 진출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 어려워요. 공기관이나 기업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맥간공예에 관심이 있는 타 국가 예술가들이 한국에 와서 맥간공예를 배우고 알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공예기술이 얼마나 뛰어난 지 세계에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랍니다.”

그는 앞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으로 수원 화성을 토대로 동서남북문인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을 꼽았다.

“있는 그대로의 사대문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방위신을 표현한 사신도인 청룡(동), 백호(서), 주작(남), 현무(북)를 대입, 현실적인 모습에 상상적인 의미를 더하는 대작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또 맥간공예의 본산인 수원에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나 관련 강좌가 없다는 부분도 아쉬워 했다.

“맥간공예는 목재뿐 아니라 철재, 습재 등 어디에도 장식이 가능한 만큼 인테리어 기술자들이 맥간공예를 배우면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맥간공예 아카데미나 대학에 맥간공예학과가 신설돼 많은 후학을 양성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맥간공예를 배우고 있거나 배우려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바람 또한 내비췄다.

“대부분 사람들이 맥간공예를 방법(기술)만 배워서 다른 분야에 응용하거나 여성만이 배울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맥간공예를 만든 저 또한 남성인 만큼 남성분들의 참여가 있었으면 합니다. 또 여자회원들은 결혼 후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후학 양성 차원에서 보다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글ㅣ김장선 기자 kjs76@kgnews.co.kr

사진ㅣ오승현 기자 osh@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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