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시민과사회]노동자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나라

 

지난 6월과 10월 평택비정규노동센터에서 평택지역 중·고등학생 57명을 대상으로 ‘노동자는 □다’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의 결과, 노동자는 ‘거지’, ‘못 배운 자들’, ‘일개미’, ‘돈 버는 기계’, ‘강철인간’ 등이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부정적인 이유는 노동자의 개념을 저임금의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학생들이 매우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과 사회에서 노동자의 존재가 노동에 시달리는 나약한 존재로 드러났다고 추측됐다.

그러나 노동자란 노동력을 제공해서 임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생산수단 유무를 따져 생산수단이 있는 계급인 자본가와 생산수단이 없기 때문에 노동력을 판매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계급인 노동자로 이루어져서 발전돼 왔다. 만약 생산수단이 없다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아니라면, 노동자는 매우 가치중립적인 개념이 된다. 그러나 2013년 한국사회의 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고 우울하기까지 하다. 자신이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인식을 갖지 못하는 가하면, 아이들에게 노동자로 성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처럼 가르치기도 한다. 부모들이 선호하는 전문직 종사자들도 노동자에 속하지만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인식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자본가들과 같은 잣대로 그들을 비난하는 노동자들도 상당하다. 더욱이 최근 공무원 노조와 전교조에 대한 정권의 법외노조 통보는 오랜 시간 어렵게 찾게 된 노동자들의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짓밟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정규교육과정에서 노동권이나 노동법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노동조합은 자연스러운 조직이기보다는 개인의 각오와 결심이 필요할 것만 같은 부담스러운 존재로 여겨진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자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입되는 교육은 자본주의 경쟁이 매우 합리적이고, 노력하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식으로 강요된다. 이에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겐 엘리트코스가 당연히 보장되는 것처럼 논리는 완성된다. 경쟁을 통해 상위 1%만이 삶이 보장되고, 나머지 99% 사람들의 노동은 가차 없이 평가절하 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행복은 보장될 수 없다. 이것이 당연하다면 직업에 귀천이 없고,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치는 도무지 자리할 곳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매우 안타깝게도 이러한 메커니즘이 현실의 일면이기에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자신들의 일터에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향상시키기보다는 자식의 엘리트코스를 위해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 그렇게 해서 엘리트 코스 진입에 성공한 학생과 부모들은 사회 연대나 공동체 발전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기 위해 철저히 개인의 이해에 따라 살아가고, 불합리한 노동의 층위는 더욱 강화되어 간다.

이제까지 한국사회가 겪은 경제위기에서 노동자 가정이 붕괴된 적은 많아도 자본가들이 경제위기 때문에 망한 적은 매우 드물다. 경제위기 극복이 자본의 노동비용 축소와 노동자통제 강화로 이어져왔고, 노동자들은 맥없이 자본의 공격에 상처받고 심지어 죽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수의 노동자와 예비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권리요구와 노동자를 위한 투쟁에 자유롭게 함께하지 못한다. 국가가 노동조합에 빨갱이란 옷을 입히는 한, 삼성과 같은 거대기업이 노동조합에 대해 대놓고 불법적으로 탄압을 해도 법이 지켜주지 않는 한, 부모들이 자신들의 노동권은 지키지 않으면서 자식에게 성공하라고만 강요하는 한, 우리는 자본이 원하고 국가가 수행하는 거대한 ‘반노동자 헤게모니’ 안에서 기계의 부품처럼 소모될 뿐이다. 노동자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나라에서 나와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 지금 너무나 필요한 시대정신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