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칼럼]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많은 요즘
[정준성칼럼]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많은 요즘
  • 경기신문
  • 승인 2014.09.23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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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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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실장

엊그제 우연히 ‘가요무대’를 보았다. 집사람은 옆에서 ‘웬 궁상맞게 뽕짝’이라며 핀잔을 주었지만 오랜만에 듣는 멜로디가 정겨워 흥얼흥얼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내용이 가을을 주제로한 노래들로 꾸며져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내 기분이 화창하지 않음을 느꼈고,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에/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라는 패티김의 노래가 나올쯤엔 시쳇말로 ‘가을’까지 탓다. 그래서 그런지 거실도 설렁했다. 몇일 전까지 더위에 베란다 문을 열어 젖혔었는데.. ‘가을이 오긴 왔나보다. 그렇치’라며 집사람을 쳐다보니 공감의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알고 보면 가을이야말로 잔인한 계절이다. 분명 하늘은 맑고 바람도 선선하고 날씨도 청량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가을의 열매와 은총 속에서도 순간순간 마음이 무너지고 땅 속으로 꺼지는 듯한 심란함이 이어지기도 하며 푸른 하늘을 보면서도 마음은 캄캄한 동굴로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이를두고 흔히 ‘가을을 탄다’는 말로 표현하지만 슬픔이 동반돼 더욱 생각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래서 가을하면 아주 오래전 유독 슬픈 것들이 많이 떠오르는가 보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하는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수필이 있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첫 문장을 맺는 이글은 1953년부터 교과서에 실려 수많은 학생들의 마음을 뒤흔들며 감상주의에 빠지게 했다.

수필에는 이런 글도 나온다. ‘날아가는 한 마리의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밭과 밭. 술에 취한 여자의 모습. 어린 시절 살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아무도 이제는 당신을 아는 이 없고, 일찍이 놀던 자리에는 붉은 주택들이 거만하게 늘어서 있으며, 당신이 살던 집에는 알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고, 왕자같이 놀랍던 아카시아 숲도 이미 베어져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세월이 흘러 문득 돌아본 인생의 허무함이 잘 배어있는 표현이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나도 학생시절 글 전문을 읽으며 감상주의에 빠졌었다. 그리고 가요무대를 보며 불현 듯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흐른 세월 만큼이나 많은 생각들이 교차 된 것이다.

그 생각 속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요즘시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어 우울함을 더 한다. 민생을 내팽겨쳐 놓은채 정쟁으로 허송세월하는 정치권이 슬픔을 제공하는 으뜸 원인자다. 그들 때문에 정기국회는 개원한 지 한달이 다 되어 가지만 공전중이며 국회내 협상테이블엔 먼지만 쌓이고, 본회의장엔 설렁함과 정막만이 가득하다. 도대체 국민들의 슬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월호 참사라는 아픔도 5개월이 지나도록 치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계층간 이해관계에 얽혀 민낯을 그내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야는 제 갈길로 행진중이다. 스러져간 젊은 영혼들의 슬픔을 외면한채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는 꼴이다.

어디 그뿐인가.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간 아들들을 싸늘한 죽음으로 맞이해야 하는 부모와 이를 보는 국민들의 슬픔이 온 나라를 뒤덮었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신통치 않다. 이런 와중 속에 세월호 유족은 폭행사건에 연루돼 국민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면서 가치관의 혼돈마저 불러오고 있다.

식물국회니, 국회공전이니 하는 사이 담뱃값, 주민세, 자동차세 등등 세금은 줄줄이 인상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겉으론 복지 때문이라고 끊임없이 외쳐댄다. 마치 복지를 위해 세수를 확보하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 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참사를 계기로 적폐 해소, 관피아 척결에 한목소리를 냈지만 소리만 요란했다. 신문엔 여전히 부정과 부패 불통과 역주행의 연속이라는 기사를 쏟아내기 바쁘다. 이처럼 아직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많은 계절이지만 세월은 가고 있다. 가을보다 더 삭막한 겨울로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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