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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쏜 화살에 남 탓 말라

 

두 발을 편하게 벌리고 서서 숨 한번을 들이 마시며 물동이를 머리에 이듯 활을 들어 올린다. 숨을 천천히 내쉬며 앞 손은 태산을 밀듯 하고, 시위를 잡은 뒷손은 호랑이 꼬리를 잡아 당기듯 지긋이 끌어당긴다. 잠시 과녁을 응시하고 멈췄다가 팽팽한 긴장감을 끊어 내듯 화살은 미련 없이 시위를 떠난다. 짙푸른 창공을 향해 화살 한 개가 얇은 잔상을 만들며 허공을 가른다. 이내 저 멀리 떨어진 과녁에서는 맞았다는 둔탁한 소리가 은은하게 퍼진다.

우리의 전통무예인 활쏘기의 모습이다. 아무런 흔들림 없이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며 화살 한 개 한 개에 온 정성을 담아 수련하는 활쏘기는 그야말로 군자에게 어울리는 무예이기도 하다. 우리네 활쏘기는 기본적으로 이 땅을 지켜온 가장 중요한 군사전술의 핵심이었다. 높고 험준한 산지가 많아 외세를 막아낼 때에는 깊은 산성에 웅거하였다가 적이 몰려들면 쉼 없이 화살을 쏘아 접근조차 어렵게 만드는 전술이었다. 또한 달리는 말 위에서 정교하게 활을 쏘는 기사(騎射)는 고대부터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몸문화의 결정체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무관들의 공식 등용문이었던 무과시험의 실기과목은 활쏘기가 주를 이룬 것이다. 예를 들면, 철전(鐵箭)이라 하여 크고 무거운 화살을 쏘는 법이나 편전(片箭) 혹은 애기살이라 하여 작은 화살을 통아라는 대롱에 넣어 쏘는 법 모두 무과시험을 중심으로 발전한 전통 활쏘기 방식이다. 여기에 좌우 각각 다섯 개씩 일정 거리마다 표적을 세워두고 말을 전속력으로 달리며 활을 쏘는 기사(騎射) 역시 무관이 갖춰야할 가장 기본적인 몸수련 방법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활터에서는 화살들이 허공을 가른다. 선조들의 유구한 몸문화가 담긴 활쏘기를 익히기 위하여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훈련에 훈련을 더한다. 활을 배우기 위해 여러 가지 정진방법이 있는데, 그 중 몇 가지 원칙을 보면 그 움직임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 가장 먼저, 안전을 위하여 지형을 살피고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고(선찰지형先察地形 후찰풍세後察風勢), 화살을 잡은 후에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몸의 자세를 바로 잡는다(흉허복실胸虛腹實 비정비팔非丁非八). 활을 잡은 앞손은 힘껏 밀고 시위를 잡은 뒷손은 화살을 쥐고 팽팽히 끌어 당겼다가 활을 쏘는데(전추태산前推泰山 후악호미後握虎尾), 화살이 표적에 맞지 않았다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반성해야 한다(발이부중發而不中 반구저기反求諸己).

사대에 올라 활을 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 원칙을 가슴에 새기고 활을 가득 당기게 된다. 이 중 그 시작과 끝에는 우리네 삶의 핵심이 담겨 있기도 하다. 가장 먼저 ‘선찰지형, 후찰풍세’라 하여 지형과 바람을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긴 안목으로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인생의 미래를 천천히 살피고 혹시 모를 돌풍을 예상하며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세상일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제 갈 길에만 바빠 앞뒤 따지지도 않고 밀어 붙이면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마지막의 ‘반구저기’라는 표현은 맹자(孟子) 공손추편(公孫丑篇)에 나오는 ‘발이부중(發而不中) 불원승기자(不怨勝己者) 반구저기이이(反求諸己而已)’라는 구절에서 유래되었다. 해석해보면 ‘활을 쏘아서 적중하지 않더라도 나를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 그 원인을 찾아야할 따름이다’라는 뜻이다. 우리네 삶에서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시련은 늘 존재한다. 문제는 그때마다 세상 탓이나 남 탓에 골몰하며 한없는 원망만 쏟아내는 것이 다반사다. 활을 잡은 것도 자신의 손이며, 시위를 당긴 것도 자신의 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화살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고 하소연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주변의 싸늘한 시선뿐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남탓을 할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문제의 원인을 짚어내야 진실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정확한 원인분석을 통해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려 노력하면 그 과정에서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될 것이다. 화살은 오직 자신의 손을 떠나야만 착지점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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