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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 본 무예]마음의 잔을 비워라

 

세상에는 사람들도 많듯이 무예도 많다. 우리나라의 전통무예부터 근현대에 도입된 외래무예까지 수많은 무예들이 존재한다. 여기에 현대에 새롭게 창작된 무예의 경우는 협회이름만 바꿔가며 일주일에 한 개씩 새롭게 만들어질 정도니 바야흐로 무예의 춘추전국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방송국에 자신의 무예약력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면 그야말로 초절정 고수들이 가득하다. 태권도는 4단 이상에 합기도, 특공무술, 검도, 우슈 등 도합 20-30단은 우수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 사람의 수련경력으로 보면 도무지 그 엄청난 합계 단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문제는 그 수많은 무예를 과연 어떻게 수련했는가에 있다.

모든 무예의 기본은 보법을 비롯한 신법에서 시작한다. 태권도는 독특한 주춤서기와 앞굽기 및 뒷굽이 자세 등으로 구성되며 합기도나 특공무술 역시 독특한 신법이 존재한다. 특히 검도를 비롯한 무기를 사용하는 무예에서 신법은 맨손무예의 신법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만약 무기를 들었음에도 맨손무예를 배웠던 것처럼 몸을 사용하면 몸 따로 무기 따로의 희한한 움직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어떤 무예를 오래 수련했을 경우에는 자신이 기존에 배웠던 기본이 새로 배운 무예에 그대로 나올 수밖에 없다. 원래 무예 수련이라는 것이 수많은 반복을 통해서 나의 의식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는 방식으로 수련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면 태권도를 10년 이상 제대로 수련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태권도형 보법과 신법이 완성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검을 비롯한 무기술을 수련하면 부지불식간에 보법을 비롯한 신법은 태권도인데, 무기술의 투로를 연마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로 자신의 잔을 비워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기존에 배웠던 것을 모두 버려야만 새로운 몸 쓰임을 배우는 것인데, 그저 동작의 연결인 투로를 모두 암기했다고 그 무예를 완성한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만약 진실로 그가 그 모든 무예를 몸으로 구별하며 깨달았다면 그는 진정한 고수의 반열에 오른 것이라 칭찬받아 마땅하다. 허나 그런 사람은 천에 한명 혹은 만에 한명 나오기가 힘들다.

이와 관련하여 전해져 오는 옛이야기가 하나 있다. 옛날에 어떤 유학에 심취한 선비가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불경을 접하게 되었다. 원래 유학을 하는 사람들은 불교 경전 보는 것을 금기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선비는 주변의 시선을 피해 깊은 산속에 은거해 도량을 닦고 있는 노스님을 찾아 이렇게 물었다.

“스님,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그리고는 자신이 기존에 공부한 사서삼경을 읊으면서 선에 대한 유학적 입장을 주구장창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때 노스님은 그 선비 앞에 작은 찻잔을 살며시 놓고 주전자를 들어 잘 우려낸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또로록…. 주전자에서 떨어지는 차의 소리는 향기처럼 그윽했다. 그런데 찻잔이 차고 넘치는데도 노스님은 계속 차를 잔에 붓는 것이었다. 선비가 깜짝 놀라며 노스님의 손을 제지하려 했다. 그때 스님은 이런 말을 선비에게 해주었다.

“꽉 찬 잔에는 아무것도 채울 수 없습니다.”

아뿔사, 그 선비는 자신의 뒷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배운 유학적 지식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선’을 이미 재단하고 있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무예를 배울 때 아니 세상만사 모든 것을 배울 때 이런 ‘빈 잔의 마음’을 쉼 없이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자신의 무엇을 배우던 간에 아무런 깨우침을 얻을 수 없다. 아니 깨우친다한들 자신의 것이 아니다.

혹자는 자신의 잔을 비우게 되면 자신의 자존심을 비롯해서 근본을 해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잔을 비움으로써 자기 잔의 크기가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깨닫게 된다. 오로지 제대로 비울 때 자신의 그릇은 성장한다. 잔을 채워야 할 때와 비워야 할 때를 깨닫는 것이 수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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