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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애도의 장소를 마련해주는 예술

 

그리스 신화에서 저주 받은 운명을 타고난 오이디푸스는 죽어서도 그 시신이 장사되지도 못하고 묫자리를 얻지도 못한 채 유기되었다. 섭정자 크레온은 그의 시신을 장사하는 이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엄포하였지만, 그대로 시신이 썩고 들짐승의 밥이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는 홀로 장례를 치르다가 결국 체포되고 만다. 인간의 법을 거슬러 목숨을 잃을지언정 신이 인간에게 내린 도리는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친족의 시체가 땅에 묻히지 못하고 썩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고 안티고네는 심판장에서 말한다.

이처럼 미학에서는 아버지의 영원한 적수 아이콘인 오이디푸스를 법의 테두리 안에 들지 못한 처연한 존재, 아무도 그 시신을 수습하지 않아 유기되어버리는 존재, 짐승만도 못한 미천한 존재의 아이콘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시신이 땅에 묻히지 못해 묫자리를 얻지 못하면, 남은 자들은 애도할 장소를 얻지 못하게 된다. 오이디푸스의 시신을 유기해 버리라는 크레온의 명령은 남은 자들로 하여금 그의 죽음을 슬퍼해서도 애도해서도 안된다고 하는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다. 안티고네가 목숨을 걸고 장사를 치렀던 것은 죽음을 애도할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작년 4월, 우리 주변의 곳곳이 노란 리본으로 묶여졌고 세상은 애도의 물결로 넘쳤었다. 어떻게 보면 참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한철 가득했던 안개가 곧 걷혀 버린 듯 세상을 가득 채웠던 곡소리도 이젠 잠잠해졌다. 문득 사고의 기억, 희생된 아이들이 떠올라 울컥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 올 때마다, 눅눅했던 슬픈 대기가 이미 걷혀버린 화창한 봄날이 생경스럽기만 하다. 작년 봄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노란 리본으로 인해 슬퍼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슬퍼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필자 역시 슬픔 뒤에 따라오는 어색함 때문에 그저 속으로 묻어버리고 만다. 애도의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한바탕 울고 난 뒤에는 찾아오는 개운함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사가 채 완료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너무 일찍 울음을 쏟아내 버린 것은 아닐까.

많은 예술인들이 세월호의 사고를 기억하자며 외치고 있다. 4월 안산의 예술인들이 기획하고 304인의 작가가 참여하는 세월호 추모 전시는 「망각에 저항하기」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하여 기획, 초청한 「델루즈(Deluge) : 물의 기억」은 2011년 호주의 대홍수 실종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제작된 작품이었다. 재즈 가수 말로는 6집 앨범에서 「잊지 말아요」라는 추모곡을 실었고,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심승옥 작가의 추모전에는 마구 부서진 잔해들로 만든 한 작품 위에 “나를 잊지 마”라는 글씨가 형광 물감으로 써져 있어 조명등이 깜빡 거릴 때마다 나타난다고 한다. 희생자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그린 「잊지 않겠습니다」의 박재동 화백은 “사람이라는게 생활하다보면 늘 이 생각만 하고 살수는 없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이 사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끔씩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1년 전에는 슬픔에 찬 비탄들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기억하기를 애쓰는 구호들로 가득하다.

이처럼 주변의 곳곳에 애도의 장소가 마련이 되어 있다는 것에 안도를 느끼고 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을 어느 한날 동시에 잃어버린 우리들로서는 애도의 장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실과 그리움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평생 풀어야할 숙제와도 같은 것이며, 우리의 일부를 그것에 내어주는 방법 밖에는 치유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각자가 지닌 마음결이라는 것이 성향이 다 달라서 좀 더 오랫동안 애도를 해야 할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린 영혼들을 가슴에 묻고 반세기를 더 살아야 하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기억하자는 외침에 격한 공감을 느끼는 것이, 내년에는 내 주변에서 애도의 장소를 찾아볼 수 없을까봐 벌써부터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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