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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시작하면서

 

유교에서는 근본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열약한 기반 위에서 왕위에 오른 정조는 생부 사도세자의 명예회복이 중요한 정책일 수밖에 없었다. 사도세자의 성화사업(聖化事業)은 재위기간 전반에 걸쳐 시행되었다. 사자(死者)의 명예를 높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혼백을 모시는 건축의 성역화인데 정조 역시 여기에 엄청난 공력을 쏟아낸다. 혼(魂)을 모시는 사당 묘(廟)건축은 종묘에 버금가는 경모궁을 건축하였고 백(魄)을 모시는 무덤 묘(墓)건축은 최고의 명당을 찾아 천장(遷葬)하였다. 그 곳이 수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이미 도시가 형성되어 있어 이를 이전하는 대역사를 하게 된다. 그 결과가 화성이며 과학적이며 경제적인 신도시가 된다. 이 도시는 현대에 와서 그 위대함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정조이후 화성은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고 현황만 유지하다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쇠락기를 겪게 된다. 특히 이시기에 행궁영역은 다른 용도로 변경되어 건물들이 철거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전쟁 시기에 성곽시설들은 대부분 소실되고 그 위용을 잃어버린다. 1970년대 박정희대통령은 ‘국방유적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수원화성도 복원정비를 하였다.

복원을 할 경우 ‘진정성(진짜)이 없다’는 이유로 유럽에서는 복원하지 않고 폐허 상태로 두는 것이 상례이다. 화성의 시설 대부분을 1970년대에 복원되었는데도 진정성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은 창건당시 공사보고서가 남아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유네스코 위원회에서도 처음에는 반대하였지만 건설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을 보고 수원화성이 비록 복원되었지만 원형과 다름없다 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게 된 것이다. 왜 정조가 만든 건축은 다른 시대의 건물보다 뛰어난 것일까? 조선후기 명나라가 망하고 조선이 ‘작은 ‘중국이다’라는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이 팽팽해지고 청(淸)를 배척하면서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 일본은 청나라와 문호개방 하여 발전을 꾀하고 있었다.

정조가 선대왕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적과의 타협하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노론에 의해 죽은 생부 때문에 정조 등극 이후 많은 사람들이 다쳤을 것인데 이렇게 하지 않았다. 생부의 죽음 이후 외부와 소통보다는 책과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고 이를 통해 중국의 문화를 누구보다 더 많이 접한 왕이라 볼 수 있다. 정조 즉위년에는 규장각을 세우기 위해 5천여 권(券)을 북경의 책방에서 구입하였고 구 홍문관과 강화행궁에 보관되었던 명나라 책들도 여기에 보태기도 하였다. 정조는 이미 책에서 더 넓은 세계를 보았기 때문에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젊은 신료들을 필요했고 또 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장소와 많은 책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여기서 공부한 똑똑한 젊은이들(초계문신)이 나중에 화성성역에 참가하게 되고 화성은 그동안 만들어진 성(城)과는 다른 과학적이며 경제적인 성곽건축이 된 것이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나와 있지만 복원되지 못한 시설로 행궁 내부의 객사부분과 성내의 수많은 관청과 군사시설이 있고 성 외부로는 영화역(迎華驛)을 비롯한 사직단과 숙지산돈대 등 아직 많은 시설이 남아있다. 그리고 영화동 거북시장에서는 이곳의 활성화를 위해 영화역을 복원하고자 매년 영화역복원을 위한 고유제를 지내고 있지만 정확한 원위치를 찾지 못해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1970년대 화성성역의궤를 토대로 여러 시설을 복원하였지만 동시에 여러 시설을 복원하다 보니 연구에 대한 시간 부족과 자료부족으로 인해 원형과 다소 다르게 해석한 부분도 보인다.

앞으로 ‘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을 연재 하면서 당시 신건축인 정조의 건축에 대한 해설을 건축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또 미 복원된 건축에 대해 위치 고증과 이미 복원된 시설에서는 원형과 다른 ‘숨은 그림’ 찾기도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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