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한때 최고의 볼거리였던 비디오테이프의 시작 광고에는 어김없이 “옛날 어린이들은 호완,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라는 내용이 나왔던 것을 중년층 이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어인 호환(虎患)은 호랑이에 물려가는 것이며, 마마는 지금은 사라진 질병인 천연두를 말한다. 지금이야 호랑이가 동물원에 갇혀만 있지만, 전통시대에는 깊은 산중뿐만 아니라 번화한 서울 도성한복판을 대낮에도 출몰해서 사람을 물어가 최고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호랑이에 대한 공포는 언제, 누구라도 물려갈 수 있는 일상적인 공포의 표상이기도 하였다. 이런 호환을 막기 위하여 조선시대에는 특별히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부대를 만들었으니, 그 이름도 위풍당당한 착호군이다. 착호군은 군사들 중 특별히 용맹하고 무예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따로 선발하여 지속적인 무예훈련을 견뎌낸 정예병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그래서 만약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착호군은 ‘5분대기조’처럼 바로 출동해 끝까지 추적해서 호랑이를 사냥하였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늘 도성 한복판 대로를 위세 좋게 행진하듯 입성해서 주변 백성들의 온갖 칭송을 한 몸에 받기도 하였다.
이렇듯 착호군의 무예실력이 뛰어나니 국왕이 도성을 벋어나 선왕의 능에 인사를 가는 원행 길에 오르면 반드시 착호군이 최측근 거리에 밀착경호를 담당하였다. 또한 착호군에 뽑혔더라도 고참들과 창이나 활쏘기 겨루기를 통과해야만 정식으로 인정받았기에 그들의 자부심은 당대 최고였다. 특히 조선초기 40명으로 시작된 소규모 부대에서 성종(成宗)대에는 440명 정도의 단독 전투를 치를 수 있는 병력으로 확대되면서 특권의식도 상당했다. 그래서 착호군들 중 근무(번직)를 서는 날이 아닌 때에는 도성 거리를 활보하며 본인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특수부대라는 것을 으스대거나 술 한 잔 먹고 행패부리기가 일쑤였다.
착호군에 대한 위상이 이렇게 하늘을 찌르니 이를 악용한 사건도 자주 발생하였다. 대표적으로 풍채 좋은 한량들이 자신들을 착호군이라고 속이고 지방 관아의 군마를 빌려 호랑이 사냥을 나서는 일까지 생겨났다. 조선시대에 군마를 빌려줄 때에는 반드시 병조판서의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한 일을 말 한마디로 해결했을 정도였으니 그 위세가 짐작이 갈 것이다. 또한 호랑이의 경우 주로 산 속으로 도망을 가는데, 착호군은 주변 마을의 사람들을 강제로 구렵군(몰이꾼)으로 동원할 수 있는 권한 있었기에 호랑이가 잡힐 때까지 며칠 동안 야영을 빙자하며 온갖 대접을 받는 사례도 자주 발생하였다. 특히 산 속에 호랑이가 숨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기르던 개를 산 속에 묶어 놓고 기다리는 것이었기에 주변 마을 개들의 씨가 마를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듯 착호군의 위세가 높았던 본질적 이유는 무엇보다도 포상금이 한몫했다. 일반 병사의 경우는 전투에 나가 공을 세우거나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모범이 되어야만 포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전투나 훈련이 없으면 아예 포상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반면 착호군은 그 창설 목적 자체가 호랑이를 잡는 부대였기에 호랑이를 잡는 것 자체가 전투였으며 훈련이었다. 서울 도성의 경우 잦을 경우 한 달에 서너 번까지 호랑이가 출몰해서 백성들이 거리에 다니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정도였기에 착호군은 늘 비상대기 상황이 많았다. 특히 호랑이 사냥에서 몇 마리를 잡았는지 그리고 첫 번째 화살을 누가 맞혔는지를 구분해서 상당한 포상금을 지급했기에 착호군의 호주머니는 늘 두둑하였다. 여기에 잡은 호랑의 크기에 따라 포상금의 액수가 몇 배로 뛰어 올랐기에 만약 큰 녀석을 잡은 착호군은 더욱 위세를 떨칠 수 있었다.
그러나 잡아도 잡아도 호랑이는 끊임없이 출몰했기에 국가에서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바로 호랑이를 잡아 바치는 노비는 신분을 평민으로 올려주고, 평민들의 경우는 평생의 세금을 모두 면제해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호랑이를 사냥해서 한 밑천 잡아보려는 조선시대 판 ‘로또’가 착호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산중의 왕이라는 호랑이를 잡는 일은 그 누구보다도 용맹스럽고 출중한 무예실력을 갖춰야만 가능했으니 호랑이 추적을 전문으로 하는 착호군을 능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