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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무예는 한편의 시다

 

무예는 ‘허공에 몸짓으로 그리는 한편의 시’다. 몸을 통해 자유롭게 대자연과 호흡하며 머리꼭대기부터 발끝까지 한 흐름을 타고 전개하는 것이 무예이며, 시 역시 언어를 통해 자유롭게 세상과 한 흐름으로 소통하는 것이 핵심이기에 서로 닮은 모습이 많다.

시에는 기본적으로 운율(韻律)이라는 것이 있다. 운율은 ‘운(韻)’과 ‘율(律)’의 합성어로서, ‘운’은 특정한 위치에 동일한 음운이 반복되는 현상을 말하고, ‘율’은 동일한 소리 덩어리가 일정하게 반복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바로 문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의 규칙적 반복을 바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한 흐름을 통해 인간은 시를 읽으며 마음속에 안정감이나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무예의 흐름에도 운율이 있다. 무기를 사용하는 검법의 경우에는 치고 베거나 찌르는 지극히 단순한 움직임이 연속되지만, 상대를 적시에 공격하기 위하여 동일한 몸 움직임이 반복된다. 또한 단순히 한 움직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공격과 방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몇 개의 움직임이 뭉쳐져 하나의 ‘세(勢)’를 이룬다. 그래서 병서에 ‘세(勢)’를 말할 때, ‘가히 지킬 수 있고 가히 공격할 수 있으니 세라 한다(可以守 可以攻 故謂之勢 가이수 가이공 고위지세)’고 하였다. 그 움직임이 단편적으로 공격이나 방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변화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시의 운율 역시 똑같은 문장이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의 감정이나 흐름에 따라 때로는 즐겁게 들리기도 하고, 혹은 지극히 슬픈 느낌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이러한 시의 운율에는 상징과 은유가 숨어서 뭔가를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시인이 그 시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은 늘 또 다른 상징체계를 만들어 문자 안에 투영한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독자들은 상징의 의미를 뒤쫓아 가며 그의 마음을 한번 더 살피려 한다. 상징이 시 전체를 관통하는 기둥이라 한다면, 은유는 그 기둥에서 펼쳐진 나뭇가지와 잎새와 같기도 하다. 상징이라는 거대한 줄기를 바탕으로 은유는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의 싱그러운 움직임처럼 그 나무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무예의 자세를 정리한 검법(劍法)이나 권법(拳法) 등에서도 이러한 시적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상대를 갑작스럽게 공격하여 들어가는 부분은 ‘산시우(山時雨)’나 ‘流星出(유성출)’이라는 자세명으로 그 빠름과 순간돌파 능력을 표현하기도 한다. 만약 무예를 수련하는 사람이 그 상징과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자세는 의미없는 몸짓으로 흘러 버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시와 무예는 거짓없는 바른 마음과 몸 쓰임이 기본 중에 기본인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시에 대하여 이렇게 평하였다. ‘시경 삼백편의 내용을 한마디의 말로 대표할 수 있으니, 생각함에 간사함이 없다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이처럼 뭔가를 꾸미지 않고 본연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시이며, 진실한 몸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무예인 것이다.

그래서 시는 진실한 경험이 담겨 있어야 하며, 무예는 진실한 수련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근대 독일의 시인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였던 릴케(Rilke, Rainer Maria)는 ‘시는 체험이다’라고 지극히 단순한 문장으로 시를 정의하기도 하였다. 이것을 무예로 전환시킨다면, ‘무예는 수련이다’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는 누구나 한번 즈음 시인의 마음으로 글을 쓰기도 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몰래 접어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슬픔을 꾹꾹 눌러가며 한자 한자 채워 넣었을 것이다. 일상에 젖고 현실에 취해 비틀 거리는 오늘, 얼마나 똑똑한지는 모르지만 모든 사람을 목 꺾인 바보로 만드는 네모 스마트폰은 덮어 놓고 내 안에 존재했던 그 ‘시인’에게 조용히 말 한번 걸어 봤으면 좋겠다. 좀 더 진실하게, 너는 잘살고 있느냐고…. 그리고 비록 빌딩 숲 작은 공원이라도 몇 걸음 걸으며 내 몸은 안녕한지 한번만 물어보자. 그것이 작은 수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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