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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검무(劍舞), 그 아름다운 칼을 말하다

 

태초의 춤은 자연에서 출발하였다. 자연스럽게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나무 잎사귀들의 움직임이나 천둥번개를 몰고 빠르게 움직이는 무서운 구름의 모습 등을 상상하며 인간은 춤을 풀어냈다. 이는 인류의 나약함을 감추고 대자연에 의지하려는 본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래서 고대 인류의 다양한 제의(祭儀)행사에서 춤은 빠짐없이 등장하였다. 특히 풍요로운 곡식을 감사하는 추수감사절 성격의 축제에서 춤은 하늘에 올리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축제(祝祭)는 말 그대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축하하는 마음을 모아 하늘에 올릴 기원을 담아내었던 신과 인간이 만나는 시공간이었다. 그 축제 속에서 춤은 가장 인간적인 몸으로 자연을 흉내내며 하늘과의 소통을 이끌어내려 했다. 그 춤과 무예가 만난 것이 바로 ‘검무’다. 가녀린 여인네의 손에 쥐어진 두 개의 칼이나 서슬퍼런 눈빛을 가진 장수의 손에 들린 큰 칼 하나의 움직임에는 그런 하늘과의 소통을 기본으로 풀어낸 것이다. 칼이나 창을 쥐고 춤을 추며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기원하고 아군의 승기를 북돋기 위하여 펼쳐진 검무는 날로 화려함을 더해갔다. 심지어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잘나가는 기방의 여인네라면 검무 정도는 쉽게 출 수 있어야만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진주검무나 밀양검무, 평양검무는 대표적인 여인네 검무로 이어져 내려고 있다. 또한 조선후기 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에서 우리의 가장 오랜 검법인 본국검법이 신라화랑의 검무에서 유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따라서 검무 안에는 춤과 무예의 본질이 살아 있어야 한다. 만약 오랜 수련없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예를 들면 오로지 아름다운 춤사위에 현혹되어 가락에 맞춰 몸을 풀어낸다면 그것은 검무가 아닌 무기를 들고 춤을 추는 또 다른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무예의 속성인 실전성에 과도하게 치우친다면 그것은 선의 아름다움이 무너지고 오로지 단순한 공격과 방어로 이어지는 전투적인 몸짓으로 변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굳이 검무를 배우지 아니했더라도 오랜 세월 무예를 수련하거나 춤을 익혀온 고수들은 그 자체로 깊은 맛이 절로 난다. 가사적삼을 입고 승무를 펼치는 노승의 절제된 걸음걸이는 마치 적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움직임이요, 온힘을 떨쳐 펼치듯 기운을 한 곳에 모아내면 그것이 일격필살의 살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수련을 거듭한 검객이 휘두르는 한칼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검무가 된다.

이처럼 춤과 무예가 만나 새로운 형태로 탄생한 검무는 어떤 때에는 춤이라는 외피를 쓰고 무예의 본성을 품는가 하면, 다른 때에는 무예라는 틀 속에서 아름다움을 펼쳐내 보이기도 한다. 춤과 무예 그 두 가지의 관계성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은 아마도 ‘논어’에 등장하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일 것이다. 그 내용을 풀어 보면, “바탕(質: 참된 마음)이 형식(文: 예의범절)을 압도하면 거칠고, 형식이 바탕을 압도하면 겉모습만 번드르르 하다. 형식과 바탕을 잘 어울러야(文質彬彬) 비로소 군자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내용이 중요한가, 형식이 중요한가에 대한 공자의 설명이다. 겉모양 꾸미기를 싫어하는 질박한 사람은 내용이 중요하다 할 것이고 미적 감각과 사교성이 뛰어난 사람은 형식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명쾌한 결론은 “내용과 형식이 잘 조화된 후에야 군자답다”라며 이 두 가지를 겸비해야 한다고 명쾌히 결론 내렸다.

오늘날 우리들은 지나치게 형식 즉 외형에만 치우친 모습을 자주 접한다. 속된말로 겉멋만 들어 속 내용물은 허접한 경우가 많다. 검무의 경우도 지나치게 화려함만을 추구하며 무예의 본질은 저 멀리 팽개쳐 버리는 경우도 많아 마음 한편이 불편하기까지 하다. 모든 복합예술이 그러하듯이 조화롭게 한 흐름으로 만드는 일은 너무나도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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