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거쳐 스리랑카 대표팀 지도
구, 캐디출신 골퍼로 한·일 평정
50세 넘어서도 현역…심장마비死
신, 1970~80년대 최고 인기 선수
한국·홍콩서 지도자 생활 이어가
2016년은 붉은 원숭이의 해인 병신(丙申)년이다. 12년마다 돌아오는 원숭이의 해이지만 2016년은 특별히 붉은 원숭이의 해로 불린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10천간 중 ‘병’이 음양오행 사상에서 붉은색을 띤다는 옛말에 따라 붉은 원숭이의 해라고 불리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붉은색은 액운이 낀다’는 속설 때문에 꺼리는 색깔이지만 중국에서는 오히려 진취적인 기상이 있다며 선호하는 색깔이기도 하다.
이런 속설들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삼아 한해의 운세를 점치기도 한다.
2016년에 환갑을 맞는 사람들은 1956년 병신년에 태어났다.
스포츠계 인물들을 찾아보면 프로야구의 ‘불사조’로 불린 박철순과 한국여자프로골프의 개척자 고(故) 구옥희 등이 1956년생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저마다 자신들의 분야에서 역사를 만들었다.
박철순은 프로야구 초창기인 1980년대 독보적인 투수였다.
1979년 미국 밀워키 브루어스에 입단,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박철순은 1982년 한국에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귀국해 두산 베어스의 전신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프로야구 원년에 22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한 박철순은 그러나 무리한 등판 때문에 심각한 허리 부상을 당했다.
누구나가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평가했지만 박철순은 부상과 재활을 거듭하며 1996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원년 이후 한번도 한 시즌에 10승 이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난 그에게 팬들은 ‘불사조’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사업가로 변신하기도 했지만 야구와 질긴 인연을 끊을 수 없었다.
박철순은 지난 해 3월 야구의 불모지인 스리랑카의 대표팀 지도자를 맡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달 동안 박철순의 지도를 받은 스리랑카는 제11회 동아시안컵에서 3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한국여자프로골프의 대성공을 만끽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구옥희도 1956년생이다.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오빠들과 생활한 구옥희는 1975년 고양시내 한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사실상 독학으로 골프 스윙을 배운 구옥희는 1978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제1기생으로 프로테스트를 통과했고, 1979년 쾌남오픈에서 첫 우승을 시작으로 1980년 5승, 1981년 4승을 거두며 국내 1인자로 자리를 굳혔다.
1983년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의 문을 두드린 구옥희는 2005년까지 일본 무대에서 23승을 거두는 맹위를 떨쳤다. 1988년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서 우승, 한국 선수로서는 1호 우승자라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서울올림픽의 열기에 묻혀 구옥희의 우승 소식에 관심을 보여준 이들은 거의 없었다.
구옥희는 2004년 한국여자골프 명예의 전당 1호로 입회했고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정규투어에 출전, 후배들과 샷 대결을 벌였다.
2011년에는 KLPGA 제11대 회장에 선출됐지만 그의 말년은 쓸쓸했다.
구옥희는 2013년 여름 일본의 한 골프장에서 연습을 한 뒤 골프장 숙소에서 홀로 숨을 거뒀다.
농구계의 걸출한 1956년생 스타는 신동찬이다.
1970∼1980년대 당시로서는 큰 키인 190㎝였음에서도 실업농구 삼성에서 가드를 맡았던 신동찬은 터프한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여자프로농구 금호생명에서 감독을 맡았던 신동찬은 홍콩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고 2003년에는 홍콩의 윈링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박철순과 구옥희, 신동찬 등은 한국에서 액운이 낀다는 ‘붉은 원숭이띠’였지만 불굴의 의지로 한국 스포츠사에 굵직한 한 획을 그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