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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대한민국의 봄’은 언제 오려나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지만 마주치는 바람만큼은 따스하게 느껴지는 봄이다. 춘분과 경칩도 지나 겨울잠에 들어갔던 개구리들도 깨어났다. 광교산 등산로에서 만나는 나뭇가지에는 어김없이 새순이 돋고, 어린 싹들은 얼었던 땅을 비집고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봄은 왔지만 대한민국은 아직도 동토(凍土)다. 정치 경제 사회 대북관계 어느 곳을 들여다봐도 모두가 ‘동토(凍土)의 왕국’이다. 특히 요즘 보여주고 있는 정치권의 행태는 연일 낯뜨겁다. 고질적인 패거리 싸움에다가 여야 모두가 서로 비방하느라 정신줄을 놓치고 있다. 국민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자기 사람 심기나 줄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의리가 생명이라는 조직폭력배들보다도 의리가 없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지은 시 ‘소군원(昭君怨)’에서 유래한다. 오랑캐의 왕비가 된 왕소군을 개탄한 노래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는 의미다. 한나라 원제(元帝)는 걸핏하면 쳐들어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흉노 왕인 선우에게 후궁 한 명을 보내기로 했다. 누구를 보낼지 고민하다가 후궁들의 초상화를 훑어보고 그중 가장 못 나게 그려진 왕소군을 찍었다. 후궁들은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화공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치며 예쁘게 그려달라고 졸라댔지만 미모에 자신있는 왕소군은 그러지 않았다. 결국 가장 못 나게 그려진 초상화의 주인공 왕소군을 찍었다. 하지만 말을 타고 흉노로 떠나는 그녀의 미모를 보고는 원제는 땅을 쳤다. 원제는 화공 모연수를 참형했다.

흉노 땅에서 항상 눈물로 한나라를 그리워하다가 죽은 왕소군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매년 이맘 때면 어디서나 즐겨 인용하는 시가 됐다. 정치인들이 특히 좋아한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좋은 기회를 맞았다. 정치적 암흑기를 벗어나 ‘프라하의 봄’처럼 ‘서울의 봄’을 온 국민이 기대했다. 늘 2인자의 자리만 지켰던 JP(김종필 전 총리)에게도 정치적 봄이 오는 듯 했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JP는 당시 상황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다. ‘한국에 지금 봄은 오고 있지만 아직은 꽃이 피어날 봄인지, 겨울 속으로 돌아갈 봄인지 알 수 없다. 봄이지만 봄 같지 않다’고 했던 것이다. ‘서울의 봄’은 전두환 반란군 무리 때문에 결국 그렇게 다시 겨울로 돌아갔다. 당시 육군 상병이었던 나 역시 영문도 모른 채, 반란군의 편에 선 부대인지도 모른 채, 총부리를 서울로 겨누어야 했던 아픈 기억에 지금도 씁쓸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며칠 전 이 시를 인용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증언록 출간기념회 자리에서 그는 “요즘 제 마음이 ‘春來不似春’이라고 했다. “꽃샘추위가 심하게 느껴져서 어딜 가나 마음 편치 않다. 요즘 총선을 앞두고 국민공천제 도입으로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하는데 여러가지 방해와 저항으로 어려움 겪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김종필 전 총리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오죽하면 국민들은 정치권의 요즘 상황을 보고 찍을 후보가 아무도 없다고 하겠는가. 경제마저도 나락으로 곤두박질한다.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 수출도 지난 해 1월부터 15개월 연속 감소세다. 젊은이들이 일할 자리가 없다. 어린이집 운영비와 교사들 월급도 이들에게는 남의 나라 일이다. 오직 자신의 권력 유지만이 최고의 목표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의 봄’은 4계절에서 아예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조국을 변화시키려면 우리 스스로가 변할 용기가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노쇠한 영국을 젊은 국가로 개조한 토니블레어 전 총리의 말이다. 한국의 봄을 재촉하기 위해 자신들은 전혀 변하지 않는 우리나라 지도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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