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칼럼]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정준성칼럼]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 경기신문
  • 승인 2016.11.0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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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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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主筆)

2013년 2월25일. 광화문광장에선 ‘희망 복주머니’ 행사가 열렸다. 국회 앞에서 취임식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 여기에 참석했다. 그리고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설치된 초대형 오방낭을 개봉했다. 그러자 그 안에서 365개의 작은 복주머니들이 달린 ‘희망이 열리는 나무’가 나왔다. 각각의 오방낭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민 공모로 접수했다는 희망들이 담겨 있었다. 박 대통령은 이 중 3개를 뽑아 직접 읽었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요청한 40대 가장, 장애인 행정절차 개선을 요구한 장애인의 글 등이었다. 박 대통령은 “희망의 복주머니에 담긴 소망이 이뤄지도록 돕는 것이 저와 새 정부가 할 일이다. 복주머니를 전부 청와대로 가져가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행사는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중계됐다. 나도 이 장면을 보면서 꽤나 괜찮은 행사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행사가 최순실씨의 머리에서 나왔고 그의 아버지인 최태민씨의 사이비종교인 영세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나 또한 그랬다. 더불어 취임식날 저녁 광화문 세종대왕 앞 오방낭 행사에서 입은 빨간색 금박 한복 두루마기를 그런 배경으로 떠올리면 소름마저 돋는다.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이며 반듯한 유교국가 건설을 지향하기 위해 무격과 무속 신앙을 내쫓았던 신념의 군주가 세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등을 통하여 국민행복시대를 개막하겠다는 비전과 각오를 천명한 대통령이다. 대한민국과 결혼하였고, 그렇기에 오로지 국민의 행복창출에 혼신의 힘을 쏟겠다고 다짐한 대통령이다. 해서 많은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시대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다.

임기가 1년4개월 남은 지금, 국정농단, 국기문란, 헌정질서 유린 등의 표현이 난무하는 가운데 비선실세의 국정개입 파문이 온 나라를 강타하고 있다. 국민들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듯 깊은 허탈감에 빠져 있다. 당시 오방낭에 담겼던 소망 중 이뤄진 것이 무엇인가를 논하기조차 부끄럽다. 어쩌면 그 나무는 태생부터 희망이 아닌 ‘절망의 나무’일 수밖에 없었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무엇하나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맹목의 지도자 덕분이다.

지금처럼 나라가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진 데 대한 책임에 대해선 청와대 참모와 여권 어느 누구 하나 자유롭지 못하다. 오로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명령 수행에만 열중한 나머지 박 대통령은 더욱 눈이 멀어갔고 참모진은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벙어리였기 때문이다. 비겁하게 장막 뒤에 숨어있는 친박이나 뒤늦게 나서 ‘구국의 열사’인양 변명과 아전인수 격 대책을 내놓는 새누리당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변명을 국민들 누가 믿겠는가. 알고서도 수수방관하고 자신의 정치행로에 해가 될까봐 모른척하고 방조하여 일을 키웠으며 국정동반자로서의 도덕적 책임 및 국민대표자로서의 법적 책무성 등을 회피했다는 것을 국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말이다.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여야할 야당이 침묵하고 있었던 것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착각을 현실로 만들어준 여권 수구 세력 모두 잘못을 자백해야 한다. ‘국민행복시대’를 열어준다는 미명하에 국민을 주권자로 대하지 않은 ‘박근혜 국정 농단’을 비호하고 떠받쳐 온 그들이 없었다면 지난 4년의 일들이 가능하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지금 와서 최순실의 검찰조사를 지켜보며 “우린 최순실을 몰랐다”는 말 뒤에 숨기 급급한 모습들을 보인다면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경고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짓밟았고, 국가 시스템은 통째로 농락당했으며, 대통령의 리더십은 불신의 대상이 됐다. 그런 점에서 최순실 사태가 가져온 위기는 훨씬 엄중하다. 때문에 이번 사태의 결말이 최순실과 비위 관련자에 대한 사법적 단죄로 그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아울러 국가원수라는 영광스럽고 막중한 자리에 있으면서 동네 무속인 수준의 특정인에게 최면에 걸린 듯 밀착되어 국정농단의 중심에 서게 됐는지에 대하여 ‘국민은 곧 하늘’이라는 겸허한 마음으로 사태의 전말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자신이 원인제공자이기에 결자해지의 관점에서 구국의 결단을 내리는 것이 국민에게 속죄하는 마지막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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