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칼럼]새 리더십에 기대를 걸고
[정준성칼럼]새 리더십에 기대를 걸고
  • 경기신문
  • 승인 2017.05.0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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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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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主筆)

고(故) 김남주 시인은 1989년 ‘사랑의 무기’라는 시집에 ‘대통령 지망생들에게’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대통령 지망생들이여/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나니/고민일랑 말거라 대머리라고/가발술이 와서 귀밑까지 덮어줄 것이다/실망일랑 말거라 곰보딱지라고/화장술이 와서 반반하게 골라줄 것이다/절망일랑 말거라 말더듬이라고/웅변술이 와서 유창하게 떠들어줄 것이다/근심일랑 말거라 뱃속이 시커멓다고/조명술이 와서 하얗게 칠해줄 것이다/걱정일랑 말거라 평판이 나쁘다고/조작술이 와서 여론을 바꿔줄 것이다/낙담일랑 말거라 청중이 안 모인다고/동원술이 와서 긁어모아 줄 것이다/낙심일랑 말거라 돈이 없다고/조폐술이 와서 찍어줄 것이다/낙담일랑 말거라 표가 안 나온다고/컴퓨터가 와서 해결해줄 것이다/그러니 동시대의 보통사람들이여 대통령 지망생들이여/곰보여 째보여 언청이여애꾸여 대머리여/ 지금은/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나니/대통령이 되고 싶거든/쓰잘데 없는 걱정일랑 하지 말고 가서 바다 건너….”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읽어도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달라진 것이 없는 대선판을 보면 더욱 그렇다. 국민들이 후보를 보는 이런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정작 당사자들의 뻔뻔함과 구태의연함은 더 나아진 것이 없으니 말이다. 청와대 가기 위하여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후보들을 보며, 대머리도 가려주고, 돈도 찍어주고, 조명술이 밝혀주고, 최선의 마이크가 목소리를 책임져 주는등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시대지만, 진정한 후보가 없고. 후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후보 자체를 볼 수 없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투표일이 가깝지만 부동층이 줄지 않고 ‘스윙보터’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선거운동이 종반전에 들어서면서 진흙탕 싸움은 더 가관이다. 국민들은 진심과 공감의 힘을 내면에 품고 있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지만 후보들의 가면도 더욱더 다양해지고 교묘히 바뀌고 있어 선택은 더욱 어렵게 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가면 뒤에 숨어 대중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여론몰이를 하는 사람도 여럿 있다. 그들은 입만 열면 적폐청산을 외치고 좌파가 집권하면 한국판 킬링필드가 벌어질 것이라는 가당치 않은 논리로 국민 마음을 불안케 하기도 한다. 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공포를 과장하거나 불확실한 루머를 사실처럼 퍼뜨려 대중의 증오와 분노를 촉발시키기도 하고 공공의 정의와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상대를 제거하려는 비겁한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이처럼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 인지를 가늠 할 수 있는 잣대마저 실종된 게 요즘이다.

하지만 국민들 마음엔 분명 원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있다. 시인 임보는 그런 대통령은 아마 이런 대통령이 아닐까 읊었다. “수많은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비상등을 번쩍이며 리무진으로 대로를 질주하는 대신 혼자서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골목길을 즐겨 오르내리는/맑은 명주 두루마기를 받쳐입고 낭랑히 연두교서를 읽기도 하고, 고운 마고자 차림으로 외국의 국빈들을 환하게 맞기도 하는/ 더러는 호텔이나 별장에 들었다가도 아무도 몰래 어느 소년 가장의 작은 골방을 찾아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는/말 많은 의회의 건물보다는 시민들의 문화관을 먼저 짓고, 우람한 경기장보다도 도서관을 더 크게 세우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양처럼 부드럽고 불의의 정상배들에겐 범처럼 무서운/야당의 무리들마저 당수보다 당신을 더 흠모하고, 모든 종파의 신앙인들도 그들의 교주보다 당신을 더 받드는/어떠한 중대 담화나 긴급 유시가 없어도 지혜로워진 백성들이 정직과 근면으로 당신을 따르는/ 다스리지 않음으로 다스리는/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그리고 아, 동강난 이 땅의 비원을 사랑으로 성취할/그러한 우리들의 대통령/당신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가?”

비록 이상(理想)적인 바램 이지만 ‘위대한 국민’이 되어야 이런 대통령도 볼 자격이 있을 것이다. 선거와 관련된 두 가지 명언 있다. 하나는 “유권자는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 간다”는 장자크 루소의 말이고 또 하나는 “정부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토크빌의 지적이다. 대통령의 수준은 곧 유권자의 수준이란 말도 있다. 플라톤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저질스런 세력에 지배당한다는 것”이라고. 5월9일 새 리더십에 대한 기대를 걸고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유권자의 힘을 투표로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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