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광교상수원과 고은, 시민의 정부가 답이다
[데스크칼럼]광교상수원과 고은, 시민의 정부가 답이다
  • 경기신문
  • 승인 2017.05.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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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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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재 사회부장

내심 기대도 했다. 환경부의 떠밀기 덕분에 우려했던 폭탄을 맞은 수원시에 장관께서 직접 방문한다니. 국가직들의 변함없는 뻣뻣하고도 무책임한 행태로 촉발된 민·민·관 간 사상 초유의 갈등을 겪고 있는 지방정부를 찾는 장관이라면 그냥 오지는 않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일게다. 더구나 국민과의 소통을 최우선 한다는 대통령이 취임한 지금, 김진표 국회의원 등 수원 출신 정치인들의 약진 속에 지역의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는 마당에, 대선에 앞서 “지방 일은 지방에서”라며 면피에 급급하던 환경부와 장관은 아닐꺼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박살났다.

가뭄의 직격탄을 맞은 곳들이나 수질오염의 대명사들은 젖혀둔채 한강청과 경기도 등의 공직자들을 대동해 수원을 찾은 장관의 행선지가 ‘광교상수원’이 아닌 일왕저수지 비점오염저감시설이라니. 누가 봐도 ‘방문기념용’이 분명한 사진 속 수원시 제1부시장의 각 잡힌 브리핑과 환하게 웃는 직원 모습은 ‘수부도시란 자위 속에 새삼 느껴지는 변방의 역차별’이라는 주변의 탄식에 고개를 끄덕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고 어렵다 해도, 세종시를 아무리 찾아가도 만나기 힘든 장관을 만났다면 한마디쯤은 이 도시의 처절한 아픔을 말했어야 하지 않았던가.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며 애써 외면하고, 한국축구 미래주역들의 잉글랜드 전이 화제가 된 날이긴 했어도 ‘차로 십분 거리에 수원시와 125만 시민의 수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광교상수원보호구역이 있다’라고. 수원시민의 대표이자 일꾼이라면 기념사진과 브리핑보다, 고작 몇줄짜리 ‘재검토’란 환경부의 실질권한 행사로 난장판이 된 현장을 직접 가보셔야 한다는 진심어린 충언이 먼저가 아니었을까란 탄식은 그래서 더 가슴을 친다.

‘잘 살아보세’란 국가주도의 새마을운동 시작 이듬해인 1971년. 마을마다 공동우물로 식수를 나누고 수원천에서 빨래하고 멱감던 시절, 16만9천967명(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의 수원시민이 쓸 수 있는 1일 5만t 용량의 광교정수장 계획 속에 ‘광교상수원보호구역’이 등장했다. 이후 1980년 31만104명의 수원시는 과거 미군사격장이 있던 파장취수원 추가지정과 1일 5만t 규모의 파장정수장으로, 당시 수원인구의 물을 확보했다. 그러나 불과 십년만인 1990년 64만4천622명으로 두배를 넘어서고, 팔당호를 기반으로 한 한강수계 광역상수도 보급속에 광역상수도로 본격 전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년 전인 1997년 5월27일 당시 심재덕 시장과 수원시는 광교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본격 추진했다(수원시, 광교 상수원보호구역 해제 검토. 연합뉴스 1997년 5월 27일자). 당시 기사에 따르면 시는 광교정비사업이 끝나는 2001년 광교산 자락 11.8㎢에 적용되는 상수원보호구역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광교저수지가 상수원으로 사용되지 않고 비상급수원 역할만 하는 상태에서 보호구역내 192가구 655명의 주민이 지나친 규제를 받고 정비사업으로 실질적인 광교저수지의 수질보존대책 마련에 따른 것이라면서도 개발제한구역 적용은 유지해 개발을 막고 녹지공간을 보존할 방침까지 분명히 했다.

세월은 흘러 네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정착한 삼십대 부모는 팔순이 되었고, 네살배기 아들은 며느리를 둔 시아버지가 되었다. 오십여년의 세월을 살아온 3대에 걸친 토박이는 예전 법에 따라 원주민이란 인정도 받지 못해 비새는 집조차 맘대로 고치지 못한 채 범법자가 되어버린 아들 손을 잡고, 손자라도 굴레에서 막기 위해 비난을 감수하고 극한행동에 나섰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멀어진채 논란과 상관없는 수원의 소중한 자산인 ‘대문호’ 고은 시인의 거취에만 시선이 모인다. 다시 문제는 원점이다. 수원시에 책임을 떠밀어도, 아무런 결정권을 갖지 못한 허울 좋은 ‘지정·고시권자’가 아닌 ‘재검토’ 명령자 환경부가 절대 결정권자이자 문제의 해결자임은 누구나 안다. 다행스럽게도 수원시가 가진 거버넌스의 자산은 차고도 넘친다. ‘시민배심원제’부터 ‘원탁회의’ 등등등. 그 과정의 결실과 자신감이 바로 ‘시민의 정부’ 아니던가. 다시 머리를 맞대 지혜를 모으고, 양보와 이해를 합해 또 한번의 당당한 결실을 만들 때다. 그것이 저 오만하고 무책임한, 면피와 자리지키기에 급급한 이들에게 ‘애민(愛民), 여민(與民), 위민(爲民)’의 수원을 제대로 보여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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