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윤인자
비탈진 밭 귀퉁이 두엄자리에
저 혼자 꽃피우고
온 들판 쏘다니더니
사생아 같은 호박 한 덩이 낳았는데
겨울이 되어도 거두어 가는 이 없다
탯줄도 못 끊고 마른탯줄 거머쥐고
여름날 당당하던 청춘은 어느새
검버섯 군데군데 피어나는
돌아갈 곳 없는 노숙자
된서리 맞으며 꽁꽁 언 채
외로운 밤을 맞고 있다.
-계간 ‘리토피아’ 겨울호에서
호박 한 덩어리가 온 들판을 굴러다닌다. 자연을 의미하는 들판의 모든 생명력이 호박 한 덩어리를 자라게 했다는 다른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란 호박을 아무도 따가지 않는다. 호박은 말라비틀어진 탯줄을 움켜쥐고 차가운 겨울로 들어서고 있다. 된 서리 맞으며 꽁꽁 얼어가고 있다. 시국이 하 수상한 즈음이라 마치 힘없는 한 백성이 떠오른다. 에너지가 넘치던 여름, 성숙해가던 가을이 그립다. /장종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