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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충격적인 비주얼, 법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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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2일  20:20:49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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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스트

그야말로 혐오스러운 법학자의 모습이다. 두상은 온통 통닭과 생선을 버무려놓은 덩어리로 되어 있고, 몸통은 두꺼운 책들과 서류 뭉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코와 눈썹, 눈동자, 안면 피부와 입술도 모두 생선이나 통닭의 부위들로 대체되어 있다. 온전한 것이라고는 그가 두르고 있는 의복뿐이다. 1566년 이탈리아 출신의 아르침볼도가 그린 <법학자>라는 작품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오지만, 그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그의 작품은 일종의 형태의 바꿔치기 놀이였다. 야채와 과일, 건초더미, 통닭과 생선과 같은 온갖 사물들이 인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식이다. 이러한 엽기적인 구성과 착시적 효과는 당시에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관객들이야 이런저런 괴상한 현대미술 작품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을 테니 놀라움이 더 컸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르침볼도를 사회를 통렬하게 비웃었던 조커 즘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는 프라하와 독일, 오스트리아를 통치하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3대에 걸쳐 황제들의 총애를 받았던 궁정화가였다. 본래 밀라노에서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작업과 회화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눈에 띠어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심지어 황제들은 화가로 하여금 자신들의 자화상을 이처럼 엽기적인 형태로 그리도록 주문했다. 루돌프 2세는 자신의 코를 콕 집어 과일 ‘배’로 만들어 달라고 까지 했다 한다. 이즈음 되면 합스부르크 왕가의 희한한 미적 취향을 문제 삼아야 할 노릇이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정말로 독특한 예술적 노선을 취했던 가문이다. 대부분의 왕가에서는 정교하고 세련된 초상화 내지 종교화를 주로 주문하고 있었지만 이 왕가는 아르침볼도라는 전대미문의 화가를 발탁한 것이다. 왕가는 아르침볼도 뿐만 피터 브뤼헐, 보쉬의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었다. 모두 나름의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지만 결코 주류의 작가들이 아니었으며, 그들 작품 모두 세기말의 불길함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하긴 안팎으로 불길한 징후들이 들끓고 있던 시대였으니 이러한 작품들이야 말로 보다 솔직한 작품들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안으로는 종교개혁이라는 광풍이 일었고, 밖으로는 강성해진 이슬람 왕국들이 호시탐탐 유럽 영토를 노리고 있었다. 기독교 수호라는 공통된 기치를 걸고 있었던 유럽은 공포와 불안감에 떨었다.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천제 원리의 발견, 신대륙의 발견들은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발 딛고 있는 세상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왕가의 여러 황제 중에서도 특히 루돌프 2세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었고, 잔혹하기까지 했다. 권력의 승계를 놓고 벌이는 파벌싸움과 이슬람 왕국과의 전쟁으로 그의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서곤 했다. 그는 궁정에 사자를 풀어놓아 신하들이 잡아 뜯기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한다. 그러니 한낱 법학자 즘이야 이처럼 흉측한 몰골로 그려 실컷 모욕을 주어도 거리낄 것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자화상도 그와 같은 형태로 주문했던 황제였다. 완성된 작품들을 보고 신하들은 당혹감에 휩싸여 어떻게 품평해야할지 눈치만 보고 있었지만 왕은 호탕하게 웃으며 화가의 솜씨를 칭찬하곤 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어지간히 독특했던 미적 취향은 그들의 자손들에게도 오래 전해지지는 못했는지, 아르침볼도의 작품은 한동안 수면 아래 머물러 있었다. 많은 이들은 아르침볼도를 괴팍한 황제들의 부호를 받으며 한낱 수작이나 일삼던 인물로 치부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표현주의 화가들과 초현실주의 화가들에 의해 그는 재조명 받았다. 아르침볼도는 살바도르 달리보다 300년 전에 활동했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달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애초의 동기야 어찌되었던 작품은 시대를 타고 흐르면서 시시각각 다른 메시지를 선사하곤 한다. 오스트리아 황제들의 괴팍한 취미 덕분에 본의 아니게 괴상한 몰골의 법학자를 대면하고는 있지만, 미디어를 통해 매일 매일 심난한 법적 공방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 작품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법의 실체가, 이처럼 더럽고 추한 것, 진정 중요한 것은 빼먹고 말장난 같은 시시비비만을 일삼는 것이라고 분개하는 일이 결코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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