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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붉은 마을에 초록 잎의 앙증맞은 질투

테마여행가가 들려주는 프랑스
꼴롱즈 라 후즈(Collonges-la-Rouge)

 

 

15∼16세기 붉은 사암으로 가옥 형성
푸른 밤나무와 포토밭 어우러져 장관
‘프랑스 가장 아름다운 마을’ 등재

종교전쟁 때도 구교와 신교 평화적 공존
산업혁명에 뒤처지며 주민 떠나 쇠락

베드로 교회, 이 마을의 랜드마크
흰 대리석 팀판은 붉은 마을색과 대조

프랑스 남부 ‘리무쟁(Limousin)’ 지방의 ‘코레즈(Correze)’ 지역에 위치한 인구 약 490명의 작은 도시로, ‘타워의 요새’라는 별명을 가진 가장 예쁜 마을이다. 15∼16세기에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가옥들로 형성, 마을 전체가 붉은 색인 것이 인상적이다. 마을 주변의 푸른 밤나무와 포도밭과 어우러진 모습이 절경을 자랑하며 석양이 드리워질 때가 되면 그 아름다움은 배가된다.

1965∼1996년까지 이 마을의 시장을 오랫동안 지냈던 샤흘르 쎄이약의 제안으로 뜻있는 몇 명이 모여서 ‘꼴롱즈 친구들(Amis de Collonges)’ 협회를 만들고, 1982년 만들어진 ‘프랑스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들’ 협회에 첫해부터 등재돼 수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마을의 역사

리모쥬의 호제 백작의 후원으로 8세기경에 프와뚜 지역의 샤후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기도원을 세우면서 마을의 역사가 시작된다. 844년 뛰렌 백작의 영지에 편입되고, 백작이 이 마을에 감세혜택을 주는 이민지원정책으로 농민들이 정착하고 장인들과 상인들도 이 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세운 성벽 주변으로 건물들이 들어서고, 인근의 ‘로카마두르(Roccamadour)’를 통해 ‘꽁포스텔 Compostelle’로 가는 순례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에 확실하고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돼 선호하는 마을이기도 하다.

16세기 종교전쟁 당시에 마을의 방비를 위해 종탑과 성당, 마을을 둘러싸는 성벽을 건설하는데, 아직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프랑스 전역을 광기로 몰아넣었던 종교전쟁 동안에 꼴롱즈는 구교와 신교 주민들의 평화적인 해결책으로 무사히 넘어간다. 교회의 본당을 카톨릭과 개신교 두 진영에서 공존하면서 함께 평화적으로 사용해 물리적인 충돌을 피한 거의 유일한 사례라고 전해진다.

루이 15세 치하의 1738년 프랑스 왕실에 합병이 되면서 감세혜택이 없어지고,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기도실이 파괴됐으며, 근대 산업혁명에 뒤처지면서 주민들이 떠나가고 마을이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암석채취장으로 바뀌어간다.

 

 

 



마을이 붉은색이 된 이유

흰색의 석회암 대륙판과 철 성분이 많은 쥐라기 시대의 사암 토양 대륙판이 만나는 곳에 가까이 위치해 산화 철 성분이 많이 들어간 암석으로, 건축물을 지으면서 온 마을이 붉은 색을 띠게 된다.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2억 6천만년 전의 페름기(2억 7천만년 전부터 2억 3천만년 전까지의 지질시대) 격변 이후, 수백만 년 동안 두 판이 서로 마주치면서 조금씩 융기돼 페름기 시대의 암반과 쥐라기 시기의 암반이 함께 발견된다. 산기슭에서 수많은 화석뿐만 아니라 암석에 흔적을 남긴 파도의 존재를 발견 할 수 있다.



인어의 집

건물의 오른쪽 모퉁이에 인어조각이 있는데 한 손에 거울을 다른 손에는 빗을 든 모습이다. 왼쪽 모퉁이에는 긴 머리를 가진 남자가 돌고래를 타는 모습의 조각이 있다. 오늘날 이 집에는 4개의 객실로 나뉘어져 있는 미술 박물관과 전통 박물관이 있다. 두메산골 춥고 긴긴 겨울철에 벽난로를 중심으로 생활하던 이 지방의 옛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곡물 및 와인홀

성당 바로 앞에는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 지붕을 얹힌 넓은 공간에 재래시장이 열리는데, 한쪽에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던 빵 굽는 화로가 남아있다. 16세기에 지은 것으로 사암과 석회암 지붕이 덮인 넓은 시장터이다.


 

 

 


베드로 교회

이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해 랜드마크적인 상징성을 갖는 베드로 교회는 11∼15세기에 걸쳐 지은 것으로 이 작은 마을에 이처럼 크고 화려한 성당이 존재한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인데, 특히 리무쟁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양식의 종탑이 위용을 자랑한다.

11세기에 4개의 기둥 위에 장방형으로 지어졌고, 약 1세기 후 돔 위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을 증축하면서 서쪽 입구의 현판에는 ‘뚜렌(Turenne)’의 석회암 부조 장식을 만든다. 이 마을 전체가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다르게, 이 성당의 팀판은 독특하게도 흰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다. 12세기에 조각된 11명의 제자들과 성모 마리아 상과 함께 예수의 승천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성상파괴를 하던 종교전쟁 당시에 숨겨져 있어서 다행히 파괴되지 않았고, 교회 복원공사 중에 발견돼 1923년에 다시 설치됐다.

13세기에 교회의 본당에는 고딕양식의 ‘첨두형 아치’창이 설치된다. 14세기와 15세기에 남쪽과 북쪽에 측랑을 건설하는데, 마침 영국과의 백년전쟁으로 경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방어를 위한 요소들이 첨가되면서 전체적인 조화가 파괴되고, 영국군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감시 역할을 하는 정사각형의 높은 타워가 세워진다.

종교전쟁을 하던 시기에 개신교와 카톨릭이 공존하던 시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본당에서는 개신교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좌측의 측랑 부분에서는 카톨릭 교인들이 미사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나무를 대고 커튼으로 두 공간을 나눴기에 서로 경쟁적으로 찬송을 불렀다. 지금도 성당의 기둥에는 커튼을 걸기 위해 홈을 파놓은 흔적이 남아있다. 좌측 측랑 부분에 구교도 카톨릭 성도들이 미사를 드리던 장소에는 성모에게 헌정된 화려한 성소가 인상적이고 특히 강렬한 햇살이 스테인드 글라스의 통해 실내로 들어오는 영롱한 빛의 향연은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 중 하나다.

참회자의 예배당

15세기에 건설돼 ‘검은 참회자들의 형제(la confrerie des penitents noirs)’가 정착하면서 이 곳은 꼴롱즈의 상징적 장소가 됐다. ‘검은 참회자 형제단’은 죽은 자를 무료 자원봉사로, 장례를 치러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인데, 여성도 회원으로 참여가 가능하다. 모두 검은 옷을 입는데 유일한 차이점은 남성은 검은색 허리띠, 여성은 흰색 허리띠를 착용하는 것이다.


 

 

 


벵 게스 성

이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1560년경에 세워졌다. 우리는 나선형 계단, 탑, 포탑, 우아한 창 르네상스 양식의 창들이 보인다. 이곳에 진입하기 직전 왼쪽에는 가까운 ‘로카마두르’ 또는 ‘까오흐’로 향하는 순례자에게 정보를 준다.

/정리=민경화기자 mkh@



 

 

 

>>테마여행가 안완기는…

한국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의 건축을 공부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에 빠져 들게 됐다.

그는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해 감상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는 수 많은 여행객들을 보면서 프랑스를 제대로 느끼고 배우는 정직하고도 건강한 여행문화를 꿈꿨다.

지난 2003년부터 프랑스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홈페이지(www.algogaza.com)를 제작, 운영해 유용한 프랑스 여행관련 정보 및 자료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약력>

- 1986년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 1992년 프랑스 유학

- 1995년 Strasbourg 건축학교 수학

- 1998년 Val-de-Marne Paris 건축학교 수학

- 2002년 프랑스 테마여행 전문 가이드

- 2006년 ‘알고가자 프랑스’ 테마여행사 운영

- 2014년 ㈜OECD 대표부 대외협력부 근무

- 2014년 9월~ ‘알고가자’ VIP여행사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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