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 맑음동두천 8.5℃
  • 구름조금강릉 12.0℃
  • 맑음서울 11.1℃
  • 맑음대전 8.4℃
  • 맑음대구 6.9℃
  • 맑음울산 6.3℃
  • 맑음광주 10.4℃
  • 맑음부산 9.8℃
  • 맑음고창 7.0℃
  • 맑음제주 12.6℃
  • 맑음강화 7.6℃
  • 맑음보은 6.4℃
  • 맑음금산 5.9℃
  • 맑음강진군 9.5℃
  • 맑음경주시 4.9℃
  • 맑음거제 8.9℃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안녕, 가베리아

 

간간이 바람은 불어도 햇살이 푸근하다. 낮에 가깝게 지내는 분들이 방문을 해서 근처 문화공간으로 발걸음을 한다. 커피숍과 갤러리가 함께 있는 공간이다. 가까운 거리라 걸어가며 얼마 만에 느껴보는 푸근함인지 몸의 긴장이 풀리며 벌써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올겨울처럼 추운 겨울도 드물다. 11월부터 몰아친 추위로 한 달이나 빨리 한강이 얼었고 조정 경기장은 꽁꽁 언 강물 덕에 연습도 못 하고 지나간다. 우리나라의 겨울을 일컬어 삼한사온이라도 하는데 무슨 겨울이 막무가내로 춥기만 해서 삼한사한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시베리아처럼 추운 서울 날씨를 빗대어 서베리아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그것으로도 올 추위를 표현하기 어려운 것 같다.

작년에는 겨울이 춥다는 오보가 나와서 발열내의를 많이 준비했다가 춥지 않은 겨울을 지나면서 상인들이 본전도 못 찾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는데 올해도 큰 추위나 폭설이 없을 것이라는 예보에 작년의 실패 때문에 많이 준비하지 않아 물량이 달린다고 한다.

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늦게야 어머니 내의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내가 찾는 상품이 품절되었다고 해서 어머니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다른 집에서 사다 드렸다. 내의뿐이 아니라 난방용품이나 방한용품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추위는 내가 사는 곳이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한파경보를 확인하고 수도는 물을 약하게 틀어 놓고 문도 틈이 나지 않게 문풍지 테이프를 꼼꼼하게 붙였어도 너무 추운 나머지 유리창엔 성에가 얼음처럼 두껍게 붙어 있고 땅이 얼어 솟아오르는 바람에 문을 여닫기도 힘이 드는 것도 참고 지나갈 만 한데 문제는 정수기가 얼었다. AS기사가 와서 서비스를 하고 가면 다음 날에 또 얼어서 빨간 봉이 까만색으로 변해있다.

아침마다 가게 안에서 물을 끓이고 정수기를 녹인다. 배관을 따라 끓는 물을 붓고 헤어드라이어로 뜨거운 바람을 보내면 한참 후에 빨간 불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면 조금씩 유리창이 서서히 녹으면서 이글루 같던 가게 안으로 가베리아의 풍경이 들어온다.

추위도 이쯤 되면 횡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영하 20도가 넘는 날씨는 체감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얼마나 추웠으면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다.

“냉동실에서 겨우 나왔더니 이번엔 가스실이 기다리고 있고, 가스실에서 나오면 다시 냉동실이라고….”

추위가 좀 누그러지나 싶으면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시야를 흐리게 하고 기분까지 우울모드로 전환되는 올 겨울은 참 힘들게 지나간다.

서울에서 이사 온 사람들은 이렇게 눈도 많이 오고 추운데서 어떻게 사느냐고 하면서 괜히 이사왔다고 하며 울상이지만 다 모르시는 말씀이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죽은 듯이 엎드렸던 땅에서 얼마나 고운 싹을 틔우고 마른 가지는 서로 다투며 어떤 꽃을 피우고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지 터 잡고 살아 본 사람들은 안다.

오늘 할미질빵 덩굴을 헤치며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종달새의 노래를 들었다. 봄이 오는 것을 알리는 몇 가지 신호가 있다. 햇볕이 투명해 지고 바람도 순해지는 걸 풀도 알고 나무들도 알아 열심히 샘 줄기를 찾아 입에 문다. 새도 한층 맑고 높아진 소리로 울며 소식을 전해준다. 언제나 사람이 제일 늦게 알아차릴 뿐이다. 아마도 곰의 자손이라 그런가 싶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