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벼보다 아름답게 보리
황금빛 벼보다 아름답게 보리
  • 민경화 기자
  • 승인 2018.03.27 19:12
  • 댓글 0
  • 전자신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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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원장, 보리 생산지 밀양서 자라
보릿대 은은한 색감 매료돼 공예 시작
연구로 7개 실용신안·2개 특허 등록
“사람들, 맥간공예 보며 위안 얻기를”

이상수 맥간공예연구원장을 만나다

지금은 건강을 위해 특별히 먹는 곡식이지만 예전에는 중요한 식량이었던 보리는 9, 10월에 나는 벼보다 3개월 가량 먼저 수확해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 허기를 채워준 고마운 곡식이다. 10월에 파종하는 보리는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서야 결실을 맺는다. 그래서인지 보리의 외면은 화려하지 않다. 옅은 흑색에 거친 표면, 줄기는 마디가 높고 속이 비어 있다. 황금빛 벼에 비해 눈에 띄지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은은한 색감은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맥간공예는 보리에서 나오는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매력을 예술적으로 풀어낸 공예 장르다. 보리 줄기에 매료된 이상수 맥간공예연구원장이 1980년 맥간공예를 창안했다.

 

이상수 원장은 경상남도 밀양에서 나고 자랐다.

밀양은 보리를 많이 생산한 지역이기에, 마을 어르신들이 소일거리로 보릿대로 모자나 장신구를 만들기도 했다.

미술을 좋아했던 이 원장은 보릿대의 은은한 색감이 눈에 띄었고, 고향에서 만난 보릿대의 아름다움이 맥간공예를 만든 계기가 됐다.

“미술을 좋아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전문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없었고 화가들의 그림을 책으로 찾아보며 작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특히 이중섭 작가의 담배 은박지 그림을 좋아했는데, 은박지의 결을 통해 입체감을 살린 표현에 매료됐습니다.”

결을 통해 만들어지는 입체감에 주목한 이상수 원장은 보릿대에서 독특한 결을 발견했다.

“우연히 펼쳐진 보릿대를 보게됐는데 반짝이는 색감에 결이 살아있는 것을 발견했고, 제가 원하는 입체감을 보릿대를 통해 구현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펼친 보릿대는 크기도 작았고, 쉽게 변색되기에 오래 보관하기 어려웠다.

보릿대에서 영감을 찾긴 했지만 이를 작품으로 완성하기엔 어려움이 있었고, 작품화시키는 연구에 3년을 보냈다.

연구 끝에 색감과 보관시간을 개선하기 위해 보릿대를 삶고 말려서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보릿대를 붙이는 방식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양면테이프를 직접 개발해 사용했다.

이후에도 맥간 작품에 대한 연구를 지속, 1983년 ‘보릿대를 이용한 장식판 제조용 무늬지’에 대한 실용신안 등록을 시작으로, ‘보릿대를 이용해 제조된 장식판’, ‘무지개빛 필름지를 이용해 제조된 장식판’ 등 7개의 실용신안과 2개의 특허를 등록했다.

맥간 작품은 보릿대를 펴서 양면테이프에 넓게 붙여 도안에 맞게 잘라 판에 붙여 완성된다.

단순한 과정같지만 손으로 하는 작업이기에 정교함과 정성을 들여야 제대로 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이미지의 드로잉만으로 입체적인 표현을 살리기 위해서는 결의 방향, 보릿대의 색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상수 원장이 지난 30여년간 연구해 완성한 1천여점의 도안은 맥간공예의 핵심이다.

주로 동물의 형태를 작업하는 이상수 원장의 작품은 보릿대로 만들었다고 상상하기 어려울만큼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이상수 원장은 “맥간공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입체감입니다. 접해있는 부분들은 결의 방향을 달리하고, 테이프의 색상을 다르게 사용해 평면이지만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게 작업한다”라며 “보릿대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도안을 꾸준히 연구했고, 그동안의 노하우가 담겨있는 도안을 사용하면 누구나 맥간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수백점의 작품을 완성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이 원장은 ‘사신도’를 꼽았다.

 

고구려 벽화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붉은 바탕에 용과 봉황, 호랑이, 거북이가 채워져 있다.

이 원장은 “이전까지는 맥간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한 작품을 만들어 왔다면,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길상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작한 첫 작품이 사신도다”라며 “내 작품이 단순히 보기에 아름다운데서 끝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여유와 안정을 찾아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메시지가 있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35년이 넘게 한길을 걸어왔지만, 이상수 원장은 여전히 새롭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상수 원장은 “보릿대라는 자연이 준 재료로 운좋게 작품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그 가치를 높이고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제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 많은 분들이 맥간 작품을 보고 위안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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