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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만년필]전쟁은 낭만적이지 않다

 

남북회담과 6·13 지방선거 이후, 보수궤멸이라는 단어를 미디어에서 수없이 접했다. 그럼에도 효력을 다한 것이 반공정서를 제 호주머니 속 유리알로 여기던 얼굴들인지, 아니면 반공정서 그 자체인지는 더 생각해볼 일이다. 오랫동안 대결의 말씨는 참으로 검질겼고, 또 매혹적이었다. 몇 해 전 북한의 도발에 대한 응답으로 일어났던 한 해프닝을 떠올려보자. 예비군들이 SNS에 자기 군복을 찍어올리며 항전의 의지를 보였던 일, 이때 SNS는 재판장이라기보단 런웨이다. SNS군복인증은 대결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아름답고 추함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때때로 전쟁은 도덕보다 미학과 친하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모두 시체거나 돌이다. 모두 전쟁을 알지만, 그것을 경험한 이들의 일부는 세상에 없으며 생존자들은 마치 메두사라도 본 것처럼 석화한다. 아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때, 영화산업은 스스로 야사(野史)가를 자처하며 그 정사(正史)의 공백을 메웠다. 이 야사들이 전쟁을 낭만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낭만화에 대한 정의는 ‘잘 알려진 것에 미지의 존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시인 노발리스의 말이다.

전쟁은 영화 속에서 존엄한 것이 되었다. 양차 대전을 거치면서 수많은 선전영화들이 제작되었고, 그 안에서 전쟁은 존엄한 것으로, 병사들의 희생정신은 찬미되었다. 영화사의 대표적인 이름인 D.W. 그리피스, 존 포드 등도 그들만의 선전영화를 찍었다. 물론 이러한 선전영화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양차 대전 전후로는 유럽의 위대한 작가들이 전쟁을 영화에 담았고, 베트남 전쟁 이후로는 헐리우드에서도 뛰어난 전쟁영화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빛나는 휴머니즘을 발굴하든, 전쟁의 부당함을 고발하든, 이 영화들은 감정을 동원하여 전쟁을 둘러싼 존엄한 것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같다. 전쟁에 대한 낭만적 표상은 우리에게 대결을 가능한 선택지로 상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소 위험하다.

전쟁영화에서 애국과 희생, 가족주의와 비극적 사랑, 휴머니즘과 영웅주의를 제거한다는 것은 곧 영화에서 인간의 얼굴을 지운다는 것과 같다. 지난해 개봉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에서 하나의 예시를 보았다. ‘덩케르크’는 2차 대전 당시 퇴로가 차단된 채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영국군의 이야기다. 영화의 초반부, 덩케르크 해안에서 탈출선을 기다리는 병사들 중 한 명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뒤이어 영국군을 공격하기 위해 접근하는 독일 폭격기의 시점이 등장한다. 폭격기의 눈에 영국군은 생명처럼 보이지 않으며,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하나의 도형, 좌표의 군집처럼 보일 뿐이다. 여기에 낭만은 끼어들 틈이 없다. 그 다음엔 반대로 지상에 있는 병사들의 시점이 등장한다. 아이맥스 스크린으로 구현된 거대한 하늘, 그 위에 손톱처럼 작은 폭격기들이 종횡으로 스크린을 절단한다. 날아다니는 폭격기의 벡터는 병사의 눈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나의 생명을 철저히 요행에 맡겨야 하는 절대적 공포와 무기력함이 병사의 시점장면에 함축되어 있다. 폭격기와 병사들의 시점의 교차는 둘 사이의 압도적인 전력차를 암시하기도 하지만, 여기서 양자의 얼굴은 각각 좌표와 벡터로 환원되며 인간의 얼굴은 소거된다. 전쟁의 영화적 시각화란 이런 것일 것이다.

전쟁은 낭만적이지 않다. 특히 현대전은 더더욱 그렇다. 덩케르크에 나오는 폭격기의 시선은 최소한 폭격기 조종사의 시선이기라도 했다. 그러나 21세기 현대전에서 폭격기 조종사의 시선은 드론의 시선으로 대치된다. 전쟁영화에서 인간의 얼굴은 곧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에 발 맞춰 대결주의의 언어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것인지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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