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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자기중심적 프레임(Frame)과 역지사지

 

 

 

공자가 양식이 떨어져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제자 안회가 어렵게 쌀을 구해왔다. 공자가 부엌에서 밥솥뚜껑을 열고 한 움큼 먹고 있는 안회를 보게 됐다. 공자는 실망했다. 가장 믿은 제자였기 때문이다. 안회가 밥이 다 되었다고 하자 “방금 꿈 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면 먼저 조상께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구나.” 했다. 밥을 몰래 먹은 안회를 뉘우치게 하려는 의도였다. 안회는 무릎을 꿇고 “스승님! 이 밥으로는 제사를 지낼 수 없습니다. 뚜껑을 열 때 천장에서 흙덩이가 떨어져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 제가 그 더러운 부분을 먹었습니다.” 공자는 안회를 잠시나마 의심한 것이 부끄러웠다.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눈과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이제 완전히 믿을 것이 못 되는구나. 너희는 보고 들은 것이 꼭 진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명심하거라.”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하인이 세 시간 넘게 지각했다. 화가 난 타고르가 별렀다. 허겁지겁 달려 온 하인에게 타고르는 “당신은 해고야! 이제 이 집에서 나가!”. 그러자 하인은 “죄송합니다. 어젯 밤 딸 아이가 죽어서 지금 묻고 오는 길입니다.”라고 말했다. 타고르는 사람이 자기 입장만 생각했을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배웠다고 한다. 귀와 눈으로 직접 확인했어도 늘 심사숙고하라는 교훈이다.

이것을 ‘프레임의 법칙’이라고도 흔히 말할 수 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관점이나 생각의 틀에 따라 동일한 현상도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질문이 달라져야 답이 달라지고, 관점이 달라져야 해답도 얻을 수 있다. 여기에는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늘 문제다.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생각의 틀을 정한 다음 자만과 오만에서 나오는 자기중심적 사고(思考)때문에 분쟁은 발생한다. 여기에서 오는 섣부른 결론이 때로는 국민과 국가에 누를 끼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훨씬 넘으면서 각종 프레임 얘기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가장 광범위한 적폐청산에서부터 도덕성, 이념, 보편적 복지, 근로자 중심 등 무수히 많다. 적폐청산의 경우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감옥에서 영어(囹圄)의 몸이 된 것이 가장 큰 본보기로 지칭된다. 대통령도 잘못을 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는 건 마땅하지만 어떻든 부끄러운 역사다. 사법부 기무사 재벌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영삼 정부는 사정(司正)과 하나회 척결 등 개혁만 하다가 끝났다. 폭염에 한 줄기 시원한 비 소식은커녕 뉴스 보기가 짜증스럽다고 한다. 국민경제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어 시장에서는 아우성인데도 청와대와 정부의 손발이 맞지 않아 경제정책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경제고 뭐고 다 지난 정권 탓으로 돌린다.

기무사 문건도 그렇다. 최종적으로 수사결과가 나와야 하겠지만 계엄령 문건이 내란을 모의했다는 쪽에 프레임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내란음모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했다면 그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계엄사령관에 육군참모총장이 맡는 것은 함참의장이 3사 출신이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10·26 사태나 12·12, 5·18 때도 계엄사령관은 정승화, 이희성 대장 등 육군참모총장이었다. 한미연합훈련이나 군대훈련은 전쟁에 대비한 것이다. 계엄문건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만든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근무했던 30사단 등은 1979년 12·12 때도 서울로 출동했다. 다른 병력의 배치도 거의 그때와 흡사하다. 본래 있던 계획을 일부 수정해 만든 문건이 과연 실행계획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프레임에는 ‘역지사지’ 프레임과 ‘자기중심적’ 프레임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자기중심적 프레임보다는 ‘역지사지’ 프레임을 가져야 한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는 적과의 관계에서도 탁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정치인들이 이 프레임에 익숙해진다면 우리나라가 한 단계 성숙해질 것이 분명하다. 훗날 사화(史禍)와 당쟁(黨爭)의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지사지’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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