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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순댓국 먹으러 갔다. 순댓국보다는 장서는 날의 풍경과 질펀한 삶의 모습이 좋아 가끔은 장날을 기다리기도 한다. 성환 순댓국은 오래전부터 유명하다. 장 전날과 장날 이렇게 이틀 동안 먹거리 장이 서는데 미식가들이 이날을 기다린다.

푹 고아 우려낸 국물에 머리고기와 내장 듬뿍 넣고 파 숭숭 얹어 내어주는 순댓국은 그 맛이 일품이다. 적당히 익은 깍두기와 곁들여 먹으면 더할 나위가 없다. 요즘처럼 쌀쌀해진 날 뚝배기에서 설설 끓여 나오는 뜨끈뜨끈한 국물을 후후 불며 한 그릇 비우고 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시장구경을 나서본다. 좌판에 수북이 쌓인 뻥튀기는 늘 발길을 잡는다. 배는 불러도 뻥튀기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어 한 봉지 사서 입에 물고 다닌다. 고만고만한 난장에 상이며 소쿠리 그리고 무싯날에는 보기 어렵던 품목이 많다. 상의 옷 칠이 고와 몇 십 년은 족히 쓸 수 있다며 호객하는 늙수그레한 사내와 그 옆에 대 바구니며 채반 그리고 생활용품을 펼쳐놓고 국수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여인은 오늘따라 장사가 안 된다며 푸념 반 국수 반을 먹고 있다.

노점 몇 건너 훤칠하게 생긴 젊은이가 알록달록한 냉장고 바지와 원색의 티셔츠를 진열해놓고 원단 좋고 편하고 때 잘 빠지는 바지가 단돈 만원이라며 돈 쓰고도 돈 버는 바지가 여기 있다고 목청껏 외친다. 본인의 훤칠한 몸을 마네킹 삼아 옷을 파는 청년의 입담과 상술이 대단해보여 결국은 바지 하나 샀다.

여기저기 기웃대며 돌아보는 오일장은 훈훈하다. 옛날처럼 풍성하지는 않지만 텃밭에서 기른 푸성귀며 고구마 호박 등을 길바닥에 놓고 파는 노파가 있는가 하면 오랜만에 보는 칼갈이도 있다. 상자마다 별의별 물건을 다 담아 놓고 파는 만물상은 그중에서도 볼거리가 가장 많다. 어디서 이런 물건들을 구해오는지 생전 보지 못한 물건들도 간혹 있다.

마트나 시장은 몇 가지 사고 나면 몇 만원 들어가는데 비해 장날은 가격도 착하고 푸짐하다. 덤이 있고 에누리도 있어 시장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고 보면 내 정서는 아직 재래시장에 있다. 어릴 적 가끔씩 따라나선 장터를 잊지 못하기 때문 일게다. 가을에 수확이 끝나면 콩이며 팥 등 잡곡을 손질하여 보따리 가득 이고 어머니는 장에 나가곤 하셨다. 돌아오시는 어머니의 보따리에는 우리들의 옷과 생선 그리고 사탕도 한 봉지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장날을 기다렸다. 어머니를 따라 장 구경을 간 적이 있다. 난전 한켠에 자리를 잡고 해가 저물도록 준비해간 장거리를 판 어머니는 신발가게로 나를 데리고 가서는 까만 운동화를 사 주셨다. 까막 고무신만 신다가 처음으로 신어본 운동화다. 운동화의 바닥이 달까봐 사람들이 없을 때는 운동화를 벗어들고 가다가 저만치 사람이 오면 신발을 신고 살살 걸었던 기억이 난다.

장날 나서보면 다양한 사람살이의 모습과 애환이 보인다.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해 장돌뱅이가 되었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평생 장사로 잔뼈가 굵었으니 이보다 더 편한 일이 어디 있겠냐며 너털웃음을 짓는 사람까지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흩어지는 곳이 오일장이다. 각양각색의 삶이 어우러져 한마당을 펼치고 그 안에서 웃음과 희망과 미래가 열린다. 전국에 많은 장들이 서지만 성환 장이 유명한 것은 순댓국이 있기 때문 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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