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홀로서기의 그림자
[기고]홀로서기의 그림자
  • 경기신문
  • 승인 2018.12.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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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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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민성균관대교육학과 겸임교수
정종민 성균관대교육학과 겸임교수

미국에 사는 수잔 앤더슨(Suzanne Anderson), 그녀에게 어느 날 불행이 찾아왔다. 눈 수술을 받다 실명하게 된 것이다. 그 후에는 남편의 도움이 있어야만 회사출근 등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여보, 내가 계속 이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소. 앞으론 혼자 출근하도록 해요” 수잔은 남편의 말에 큰 상처를 받았다. 배신감마저 느낀 그녀는 다음날부터 이를 악물고 혼자 출퇴근을 했다. 넘어지고 다치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서럽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졌다. 혼자 출퇴근 하는 것이 익숙해져 가고 있을 무렵, 그 날도 어김없이 혼자 버스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그녀를 향해 무심코 이런 말을 던진다. “부인은 자상한 남편을 두셔서 좋겠어요.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보살펴주시네요.” 알고 보니 그녀의 남편은 아내의 그림자가 되어 매일 아내가 버스를 타면 같이 뒷자리에 앉아 아내의 출퇴근길을 말없이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홀로서기는 사전에서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이나 일을 해 나감’으로 풀이되어 있으며, 이는 자기 자신을 한 단계 뛰어넘는 과정이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첫발을 내딛어야 한다. 그러면 두 번째, 세 번째 발은 더 쉽게 나아갈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홀로 섰을 때 이제까지 몰랐던 자기 자신의 잠재능력을 발견하고 싹트게 할 수 있다. 땅 속 깊은 곳에 무엇이 똬리를 틀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우리 내면에는 무한한 잠재능력이 숨어 있다. 홀로서기를 미루지 않고 빨리 시작하는 것이 잠재능력을 찾아 희망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사회생활은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많은 문제들로 얽혀있다. 이런 환경에 잘 적응하려면 홀로설 수 있는 힘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홀로서기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혼자 힘으로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으면 우선 두려움이 앞선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댈 곳이 필요할 수도 있고, 기댈 곳이 있는 것처럼 든든한 건 없다. 그런데 기댈 곳이 있으면 더 나아지려고 하지 않는 것도 나약한 인간의 마음이다.

서정윤의 시 구절처럼 ‘사람은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혼자 살든, 함께 살든 스스로 홀로서기가 먼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홀로서기를 도와주는 진정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무한한 잠재력을 뒤로하고 남에게 의지하려는 정신과 태도, 행동을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 홀로서기를 돕는 것이 ‘홀로 또 함께’의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지금까지 어머니라는 존재는 ‘모성’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바쳐야 하는 숭고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깊이를 측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은 홀로서기를 저해하는 강한 적이 될 수도 있다. 어머니의 사랑에 길들여지면 ‘어른아이’가 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그것은 삶 자체에 대한 위기가 된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새는 결코 다른 새의 등에 업혀서 날아가지 않는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내 마음을 누군가 먼저 알아주고 챙겨주기를 바라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먼저 내 스스로의 홀로서기가 되어야 가족의 존재를 올바로 느끼고, 가족과 다름없는 이웃을 만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홀로서기의 그림자가 되어 ‘홀로 또 함께’의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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