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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사죄와 반성

1970년 12월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선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헌화 중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무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브란트총리는 한동안 차가운 바닥에 무릎 꿇은 채 묵념했다. 그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독일의 과거를 사죄하고 역사와 화해하려는 그의 모습은 세계인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후 독일 정치지도자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사죄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성실’이란 표현은 매우 주관적이다. 가해자가 성실했다고 주장해도 피해자가 제대로 된 사죄라고 느끼지 못한다면 성실한 사죄라 하기 어렵다. 이런 진정성의 의미에서 유태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은 사죄에 있어서 만큼 주저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다 독일인들이 100년 이상 된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한 사례도 있다. .1904년 아프리카 나미비아 헤레로·나마 부족은 독일제국의 착취에 견디다 못해 독일인 농장을 습격, 100여명을 살해했다. 이에 독일 군인 1만4천명을 파견했다. 그들은 무자비한 보복을 벌였다. 저항할 능력도 없는 헤레로·나마 부족을 사막 깊숙한 곳으로 몰아넣고, 총을 쏘거나 총검을 휘둘러 죽였다. 어린 여성들은 강간한 다음 죽였다. 사막의 우물에는 독약도 풀었다. 1907년까지 이어진 대량 학살로 헤레로족 인구의 80%(6만5천명)와 나마족 인구의 50%(1만명)가 몰살당했다. 역사가들은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인종말살 혹은 인종청소)’라 이름 붙였다. 그랬던 독일이 100년이 지난 2004년 정부 차원에서 나미비아 집단학살을 시인하면서 ‘제노사이드’란 표현을 썼다. 당시 독일 언론은 “뒤늦게나마 잘못을 시인했으니 이제 사죄만 남았다”고 했다.

1919년 4월 15일 일본 관헌의 만행에 20여명이 학살된 경기도 화성시 제암교회에 일한친선선교협력회 일본 기독교인 17명으로 구성된 사죄단이 26일 오전 찾아 와 눈물의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100년이 넘는동안 잘못시인은 물론 사죄조차 않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 같은 국민인데 어쩌면 그렇게 서로 다를까?

/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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