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 때 ‘망국노’ 놀림에 독립운동 투신… “전 세계 평화 소원이지”
14세 때 ‘망국노’ 놀림에 독립운동 투신… “전 세계 평화 소원이지”
  • 김용각 기자
  • 승인 2019.03.06 19:14
  • 댓글 0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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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희 옥 지사

조부는 의병장·父는 신흥무관학교 교관
어머니·언니·형부도 항일투쟁 헌신
3대 걸친 가족사가 독립운동의 역사

1939년 중국에서 소녀 독립군 활동 시작
밀서 전달·강제징용 청년들 탈출시키기도

“일제 항복으로 맞은 해방 아쉬움 남아
광복 잘 됐으면 통일한국이었을 텐데”

 

오희옥 애국지사는 한말 의병장이었던 오인수의 손녀이자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한 오광선의 차녀로 3대에 걸친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할아버지였던 오인수 의병장은 수백 명의 의병들을 이끌고 안성과 죽산, 양지 등에서 일본 경찰 수십 명을 사살하는 의병활동을 펼쳤고, 아버지인 오광선 장군은 신흥 무관학교 졸업 뒤 일본군을 상대로 한 무장독립투쟁을 벌였으며 이후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을 양성했다.

‘만주의 어머니’라 불린 모친 정현숙(본명 정정산) 지사는 독립군을 위해 열두 가마에 밥을 지어 뒷바라지를 했고,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해 광복군을 지원했다.

언니 오희영 지사와 형부 신송식 지사 역시 광복군으로 최전방에서 항일운동을 하는 등 오희옥 지사의 삶은 독립운동사 그자체이며 가족사이기도 하다.

3대에 걸쳐 지속적인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오희옥 지사는 어려서부터 북경, 천진, 남경, 장수, 유주 등 중국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녀야만 했다.

1939년 4월 중국 류저우(柳州)에서 언니 오희영 지사와 함께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한 오 지사는 이후 1941년 1월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될 때까지 일본군의 정보수집과 밀서 전달, 초모(招募)와 연극·무용 등을 통한 한국인 사병에 대한 위무 활동을 벌였고,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오 지사는 “같은 학교를 다니는 중국인들이 나와 언니에게 ‘망국노’라고 놀렸는데, 어린 나이에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그런 놀림 속에서 나라 잃은 서러움을 견디지 못해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됐다”며 14세의 어린 나이에 소녀 독립군으로 활동하게 된 경위를 담담히 설명했다.

 

이어 “당시 독립군 아저씨들이 중요한 내용이 담긴 밀서를 건네주며 ‘어디에 전해달라’는 임무를 부여하면, 무서웠지만 일본군의 눈을 피해 가져다 주기도 했다”며 “어린 나이에 무서웠지만 나를 시켰으니 반드시 해내겠다는 의지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길거리에서 마이크를 놓고 왜놈들의 만행을 알리는 방송을 하거나 전단 배포 선전활동과 일본군에 강제 징용된 우리 청년들을 탈출시키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 지사는 “방송으로 일본군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여기 한국 임시정부와 광복군들이 있으니 넘어와라고 전했다”며 “일본놈들의 감시를 피해 화장실에서 몰래 만나 우리 며칠, 몇시에 넘어갑시다라는 약속도 했다”며 “구사일생으로 넘어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본군의 총에 맞아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넘어온 사람들은 후방에 설치된 훈련소에서 한두 달 훈련 후 최전방에 조직된 광복군 제1지대, 제2지대, 제3지대, 제5지대에 각각 편입시켰다”는 오 지사는 “당시 7천여 명의 광복군들이 영국군과 합세해 일본놈들과 싸울 수 있었지만,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고 일본이 항복을 해 아쉬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광복군에서 계획 중이던 작전이 시행했다면 우리 힘으로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지만, 일본의 항복으로 실천할 수 없어 아쉬웠다”며 “광복이 잘 됐으면 6·25 같은 전쟁도 없이 통일된 한 나라가 되어 여지껏 평화로웠을 것이다”고 말했다.

중국 충칭(重慶)에서 광복을 맞았다는 오 지사는 “학교에 있었는데 ‘일본군이 항복했다. 우리나라를 되찾았다’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달려갔다. 너무 그려왔던 날인지 바로 실감이 안났다”며 “당시 겪었던 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했어야 했던 일이였기 때문에 지금 뒤돌아봐도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거리 곳곳에서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보고 기쁨의 눈물이 났다. 이후 태극기를 항상 방에 걸어뒀다”는 오 지사는 “왜정시절 왜놈들이 태극기를 보면 죽이려 해 감추고 다닐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항상 꺼내 볼 수 있고 방에 걸려있는 아름다운 태극기를 볼 때면 기분이 좋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에서는 자주독립에 힘써온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오 지사는 현재 뇌졸중으로 중앙보훈병원 재활 병동에 입원해 투병 중이다.

 

오희옥 애국지사는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어느 하나 뒤지지 않는 뛰어난 기술력을 갖췄고 잘 사는 나라가 됐다”며 “선조들이 나라를 위해 정말 많은 희생을 했고, 후손들은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일본은 반성도 없이 독도를 뺏으려 하고 있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도 없다. 항상 경계하고 다시는 나라를 뺏기지 않겠다는 건실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는 전 세계에 전쟁 없이 평화가 오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김용각기자 k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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