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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헬조선’이라 다행이다

 

 

 

요즘 청년들은 우리나라를 ‘헬(hell)조선’이라고들 한다. 직역하자면 ‘지옥 같은 조선’이다. 그런데 조선은 어디인가? 일제 강점기 이전의 우리나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정식 명칭인 북한?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이 말이 우리 사회현실을 비꼬는 말임을 잘 알고 있다. 그나마 ‘헬코리아’나 ‘헬한국’이 아니라 다행이다. 외국 친구에게 적당히 둘러댈 여지가 있으니 말이다. 왜 우리나라를 지옥 같다고 느낄까? 입시지옥을 뚫고 보니 취업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청년들에게 왜냐고 묻는 것 자체가 민망하다.

청년실업자가 41만 명, 청년실업률이 9.5%라는 것은 통계일 뿐 실제로 대부분의 청년이 취업을 걱정한다. 더구나 취업을 한다고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현실은 ‘88만원세대’라는 말도 만들어냈다.

내 집 마련에 서울은 15년, 경기도는 8년이 걸린다는데, 월급을 한 푼도 안 쓸 때 얘기다. 현실적으로는 30년이 걸린다. 청년들은 이때쯤 이미 정년을 걱정할 나이가 되어 있다. 그러니 ‘88만원세대’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가 되고 자연히 출산율이 떨어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부터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된다. 3년 전인 2016년 발표에서는 인구 자연감소 예상 시점이 2029년이었다. 5년마다 발표하던 인구추계를 앞당겨 발표한 것은 지난번 예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청년에게는 암울한 현실보다 미래예측 곤란이 더 불만

그것이 문제다. 생산가능 인구보다 피부양인구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 정부는 그게 정확히 언제쯤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해 주지 못한다. 미래가 예측되지 않으므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에 생산·투자·소비 3대 산업지표가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특히 시설투자는 5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인 10.4%가 감소했다. 그런데도 발표 불과 열흘 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국문회의에서 “경제가 여러 측면에서 개선돼 다행”이라고 했다. 정부의 상황인식과 예측능력이 이 수준 밖에 안 되는데 청년들이 어떻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까.

‘통일은 대박’이라던 박근혜 정부나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평화와 번영’이라는 현 정부 얘기는 공허하기만 하다. 북미 대화는 단절되고, 일본은 교과서문제로 국민감정을 긁어댄다. 미세먼지로 고통스럽지만 중국은 책임을 회피하고 우리 정부는 명확한 입장도 없다.

미·중 무역갈등과 영국의 브렉시트 등 세계경제는 위축되고 우리 수출도 계속 감소세다. 그러니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었다는 소식도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원칙에 따른 예측가능 사회라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

엄밀히 말해 경제발전이 한창이던 7~80년대보다 지금이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롭다. 지금의 현실을 지옥 같다고 느끼는 것은 상대적 감정일 뿐이다. 더 나빠질 것 같은 불안감이 문제의 본질이다. 높은 청년실업률보다 정부가 바뀌어도 끊이지 않는 공기업 입사비리가 더 절망적이다.

정부는 집값 잡기에 올인하는 척하면서, 청와대 대변인이나 장관후보자들은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렸다는 소식이 청년들 가슴을 멍들게 한다. 법에는 일사부재리(거듭처벌금지) 원칙이 있지만, ‘별장 성접대’ 사건은 두 번의 무혐의 처분을 받고도 세 번 째 수사에 들어갔다. 장자연 사건, 세월호 블랙박스는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정부가 바뀌어 다시 조사가 진행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지만 판사, 연예인, 대기업 사장들은 미리 범인으로 낙인찍혀 뉴스를 장식한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해결책도 없이 적과 아군으로 나눠 무조건 상대를 비난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이슈도 일주일을 끌기 어려운데 또 다른 사건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다이내믹 코리아’, 나쁘게 말하면 ‘헬조선’이다.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성세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럴수록 법과 원칙을 준수하여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청년들이 암울한 현실을 딛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외교나 국제경제 상황은 우리가 어쩌지 못한다 해도 국내문제라도 우리 모두가 뜻을 모아 잘 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아닌 외부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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