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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칼럼]성인지 감수성의 의미와 판단기준

 

 

 

한국 사회를 뒤흔든 ‘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 이게 무엇인가? 2월 1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를 법정 구속시킨 2심 판결문에 등장한다. 판결문은 나오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는데, 특히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표현이 그랬다. 물증 없이도 ‘감수성’으로 유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의 개념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아직 없지만, 대체로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넓게는 성평등 의식과 실천 의지 그리고 성 인지력까지의 성 인지적 관점을 모두 포함한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범죄 사건 등 관련 사건을 심리할 때 피해자가 처한 상황의 맥락과 눈높이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2018년 4월 대법원 판결에서 등장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당시 대법원 제2부는 학생을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대학교수가 낸 해임 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이때 판결에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사건으로 2014년 3월 원주의 아파트에서 55세인 도둑이 침입 후 금품을 훔치려다가 집주인 20세에게 폭행을 당해서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도둑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판결문에서는 정당범위가 성립이 안 되었는데, 그 이유중 하나가 1차적으로 도둑이 칼이나 흉기를 들고 있지 않았고, 2차적으로는 체격 차이도 있고 머리만 집중적으로 강타한 것으로 쓰러진 사람을 수 분 동안 때린 것은 정당방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텔 입구에 있었던 CCTV를 근거로 성폭행 무죄가 성립이 되었는데, CCTV내에 피해자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 성립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성정이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CCTV 찍히기 전에 싫어하는 티를 내면 죽이겠다 등의 협박을 한 상황이라면 그걸 믿어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냥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 원인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게 성인지 감수성 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대법원이 지난해 4월 제자를 성희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대학교수의 판결에서 그가 받은 징계처분이 정당하다고 하면서 처음으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당시 “법원이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사건 발생 후에도 피해자가 가해자와 가까이 지낸 정황이 있어도 곧바로 피해 진술을 ‘믿을 수 없다’라고 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던 안 전 지사가 지난 2월 2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데도 ‘성인지 감수성’이 크게 작용했다.

1심은 수행 비서가 사건 이후에도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집을 물색하고 와인바를 갔던 점 등을 볼 때 “성폭행 당했다”는 김씨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2심은 “피해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된다”고 봤다. 사건 이후 보인 수행비서 행동이 ‘일반적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선 ‘편협한 관점’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성인지 감수성 자체가 논란이 많은 상황이어서 결과를 섣불리 장담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개념이 모호한 데다 객관적인 증거보다 피해자의 진술에 지나치게 비중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이니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노출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따라서 성폭력피해자의 대처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최근 대법원 판결에 언급된 성인지 감수성 및 대등재판부 운영 방식에 대한 논의를 통해 보다 충실한 항소심 재판의 구현을 위한 제도적 및 실무적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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