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백]내 안의 두 얼굴
[삶의 여백]내 안의 두 얼굴
  • 경기신문
  • 승인 2019.05.1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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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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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경 시인
박미경 시인

 

우리가 살며 맞닥뜨리는 스스로의 결정이나 타인이 내릴 판단에 대한 짐작은 생각대로보다 다른 결과로 나타나 놀라거나 의외였던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인간성을 하나의 단어로 단정 짓는 일은 섣부르다. 나의 인간성은 순정의 상태는 아니다. 태어나며 가진 본성에 더하여 배우고 체득한 교육이나 수많은 단련의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신념을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가치관으로 완성하기도 한다. 타인의 결정이나 행동양식을 미루어 짐작하는 일은 어렵다. 사소하게는 그 사람의 취향을 짐작하여 선물하는 작은일 조차 타인의 취향에 결례가 될 수도 있다.

성선설 혹은 성악설 어느 쪽을 믿는가 하는 거창한 질문을 받고 까닭을 말해야하는 지점에서 태어나며 처음으로 표현하는 감정에 울음이 있음을 근거로 악(惡)을 말했다. 미소가 선한 것임을 전제로 했을 때 울음은 반대의 개념을 가진다.

자신의 첫 의사소통으로 내는 소리가 우리에게 들리는 울음인 것이다. 그것이 충분한 근거는 아니겠지만 감히 성악설에 한 표를 조심스레 얹을 수 있는 시작이 된다는 생각이다. 주변에 착한 이가 많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모르고 나도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으려 참 무던히 애쓰며 살아 왔다.

판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오면 내 마음 깊은 곳의 나쁜 속삭임보다는 외부의 좋은 평가로 판단 되어질 가증스런 선한 결론에 내 이미지를 보태며 살아 왔다. 학교에서 배웠던 바른생활이 항상 그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세상을 알기 전에 배운 개념정도의 그 선한 기준은 실례(實例)에서 가볍고도 쉽게 무너지는 것을 많은 일을 통해 보았다. 정의로운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내게 세상의 일은 늘 감당하기 어렵게 유리같은 가치관을 시험에 들게 했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선(善)한 것 보다는 악(惡)의 비중이 더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극적인 효과의 내용으로 선악에 대한 이미지가 선명히 그려진 이 소설은 사람의 내면에 대한 들여다보기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은 도달하기 어려운 높은 곳에 있고 악은 너무나도 쉽고 유혹적으로 주변에 쉽게 놓여있다. 기로에 섰을 때나 삶의 작은 선택에서조차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우리는 내면의 본성과 힘들게 나아가야 할 어려운 길 사이에서 항상 갈등한다. 어떤 갈등이나 망설임도 없이 선의 길을 걸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기 어려운 사람으로서 확신에 찬 그의 걸음이야말로 참으로 부럽다. 끊임없는 시험이 있어 우리는 생각하고 우리 스스로가 어떤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를 자각하게 한다.

내게는 자극적이고도 쉽게 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본성이 잠재되어 있다. 그러나 그 본성을 자제시킬 더불어 살 교육을 통해 선한 것의 행동 양식과 선을 행할 때의 기쁜 성취감으로 인간다운 것의 목표를 이뤄 낼 수 있음을 안다. 악을 경계하고 선을 향해 나아가는 내 안에 두 얼굴 혹은 다중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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