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뜨락] 신 골품제 사회
[사색의 뜨락] 신 골품제 사회
  • 경기신문
  • 승인 2019.07.18 18:52
  • 댓글 0
  •   16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탄탄 용인대 객원교수
탄탄
용인대 객원교수

 

북만주 벌판 웅혼한 민족의 기상이 서린 드넓은 고구려 영토를 당에 넘겨주고 반도땅으로 축소된 영토이었지만, 고구려와 백제를 흡수 통일해 유사이래 찾아볼 수 없던 번영을 구가했던 한 때의 신라천년왕국을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이 시절이 백성들에게 태평성대가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국왕과 지배층은 당시 태평성대라는 자신들만의 착각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 하려는 의지도 없었으며 더욱이 금수저 귀족의 사치와 향락은 극에 달했다.

삼국 중에서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삼국통일의 목표를 달성하자 이에 안주해 지속적인 개혁과 혁신을 추진하지 못했다. 지배층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고 부패해간 것이다.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해야 하는 시대적 상황을 외면한 신라는 골품제에 의한 진골 귀족들의 특권을 폐지하고 6두품을 비롯한 일반 백성들이 능력에 따라 대접받는 사회가 돼야 했지만, 통일 후 지배층은 오히려 진골의 특권을 강화하는 폐쇄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진성여왕 재위 3년 여러 주군(州郡)에서 세금을 내지 않아 창고가 텅 비고 국가 재정은 궁핍해졌다.

왕이 사신들을 파견해 독촉하자 “사방에서 도적들이 봉기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신라의 기본 체제가 붕괴 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골품제의 폐쇄성에 분노한 일반백성들은 지배체제가 이완되자 사방에서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고 심지어 백성들은 멸망한지 200여년도 훨씬 지난 고구려, 백제의 부흥을 외치며 봉기했다. 진골-6두품-5, 4두품-서라벌 백성-일반 신라백성-고구려 백제유민으로 계서화(階序化)된 사회구조는 멸망 200년이 넘은 고구려 백제를 부활시킨다. 신라의 멸망은 폐쇄적인 골품제 때문이며 지배층의 자기개혁 실종이 신라의 멸망을 낳았던 것이다.

현재의 한국사회 또한 여러 형태의 골품제가 존재하고 능력보다는 어느 지역 출신인지를 따지는 것이나,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를 중시하는 것, 남성인지 여부를 가리는 것, 등은 모두 지연 학연 성별이라는 현대판골품제이다.

국회의원의 아들딸 취업 청탁이며, 독립투사를 탄압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비뚤어진 역사와, 무전 유죄 유전 무죄의 법조계의 전횡 등 청산해야할 적폐는 산적해 있지만, 개혁과 혁신은 늘 구호뿐이다. 금수저는 대를 이어 금수저이고 흙수저가 신분 상승 할 수 있는 기회는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 처럼 어렵다고들 한다.

이러한 신 골품제 사회는 은연중에 국민의 의식에도 침투되어 인위적인 차별들이 마치 인간사회의 법칙인 것처럼 인식하게 만든다.

사회 체제 속에, 그리고 마음 속에 존재하는 모든 골품제를 해체하는 것이 개혁이고 적폐청산이다. 정규직의 안정된 삶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세상은 결코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동북아 중심 국가로 우뚝서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출신 지역과 서열화된 SKY학교, 성별등으로 역차별 당하고 좌절하는 많은 흙수저를 배려 하는 사회가 돼야 하며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인재가 대접받는 세상이 돼야 한다.

상대적인 차별이 없을수록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잘난 이들, 그들만의 리그는 결국 멸망을 좌초 할 것이기에 신 골품제(계급)사회의 해체가 시급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