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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날은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나는 우산을 쓰고 새벽 산을 올랐다. 산기슭을 오르는데 한 사내가 섬뜩한 모습으로 길목을 지키고 서 있었다. 첫눈에 노숙자 같았다. 굴뚝에서 빠져나온 듯한 시커먼 옷에, 부황기에 누렇게 들뜬 얼굴 하며….

사내는 길을 비켜 가는 나에게 눈 하나 주지 않고 그렇게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웬 노숙자야. 이 산중에….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 뒤 잊을만하면 그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사내는 점점 초라해졌다. 여름에도 두꺼운 겨울옷을 껴입고 있었다. 몸은 더욱 쇠약해졌고 얼굴은 부황기로 시커멓게 들떴다. 나는 그 사내를 볼 때마다 섬뜩섬뜩한 두려움에 감싸였다. 때로는 그 길을 피해가곤 했다. 얼마간 그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에도 홀로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다. 문득 산이 끝나는 산자락의 오솔길이 눈에 띄었다. 저긴 뭐가 있을까?

나는 별생각 없이 산 끝자락으로 다가섰다. 사방을 숲이 둘러쌌다. 끝자락 마무리에 펑퍼짐한 바위가 자리 잡았다. 그 아래로 좁은 산길이 보였다. 내친김에 그 길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움찔 발걸음을 멈추었다.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눈앞에 서 있었다. 바로 그 사내였다. 그 노숙자 사내가 홀로 산 끝자락에 서 있었다. 어이쿠, 나는 부리나케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뒤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그 사내가 궁금해졌다. 아직도 저 자리에 있을까? 설마하니….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친 어느 날, 나는 또 버릇처럼 우산을 펴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간밤에 쓰러진 덩치 큰 나무들이 보였다. 문득 산의 끝자락에 눈이 갔다. 설마 그 심한 비바람 속에 그 사내가 저곳을 지키고 있진 않겠지. 나는 호기심에 숲속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놀랄 일이었다. 그 사내가 우산을 들고 숲속에 서 있었다. 간밤 그 비바람 속에 그는 어떻게 버티었을까?

여름이 왔다. 이제 그 사내도 산에서 내려갔겠지. 나는 또 그곳을 찾았다. 정말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여전히 사내는 숲 한가운데서 검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얼른 돌아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사내는? 저 노숙자는 어떻게 그 긴 세월을 홀로 저 숲속에서 버티고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잠을 자고, 먹는 것은 어떻게 해결할까? 그 병든 몸을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그것보다도 더 기막힌 일은 홀로 숲속의 텃새처럼 숨어 있는 일일 것이다. 그 외로움을 어찌 해결할까? 차라리 한 마리 새라면 허공이라도 날 수 있으련만…. 그는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으로 소일을 할까?

뿌연 새벽빛 속에 창밖 풍경이 드러나 보였다. 창밖의 가파른 비탈 위로 여명에 잠긴 새벽하늘이 보였다. 그 노숙자는 끼니나 챙겨 먹었을까? 부황기에 죽어가는 한 마리 새를 보는 듯한 초라한 그가 자꾸만 뒤따른다.

무섭다. 이승의 세상살이가 정말 무섭다. 따지고 보면 우린 모두 그처럼 인생의 나그네들이다. 다들 정처없이 이리저리 헤맨다. 그러면서 저마다 나부댄다. 더 가지기 위해, 더 올라가기 위해, 더 많이 움켜잡기 위해 그렇게 몸부림을 치며 너나없이 외롭게 살고 있다. 누구나 울타리를 치고서 저 산자락 숲속의 노숙자처럼 우린 모두가 집 없는 나그네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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