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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빨갱이와 토착왜구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자 우리에게 더 큰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소 냉전체제의 최전방에 내몰려 분단과 6·25로 이어진 것이다. 그 후유증이 바로 색깔론이다. 논리가 결여된 이 편가르기는 전쟁 때나 있을 법한 사고방식이다. 불행히도 이 유치한 사고는 계속 확대재생산됐다. 북한에 동조하면 빨갱이로 몰려 목숨이 위태로웠다. 북한은 무조건 틀렸다는 말인데 어떻게 100% 틀릴 수 있을까. 현 정부와 지난 우파 정부 때의 ‘단계적 평화통일’과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통일’에는 공통점이 많다.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정부시절 진보당 사건(1957)에서의 기소이유는, 강령이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통일을 담고 있어서였다. 강령부분은 무죄였지만 빨갱이로 몰린 당수 조봉암은 처형됐다. 박정희 정부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포장되어 처벌됐고, 이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색깔론의 피해자였다. 이런 색깔론은 현 정부 들어 신색깔론으로 진화했다. 대북정책을 비판하면 곧바로 ‘시대착오적 색깔론’이라고 공격하는 식이다. 결국 색깔론도, 색깔론이라는 공격도 모두 색깔론식이다. 흰색과 빨강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핑크빛과 자줏빛도 있는 세상에서 이런 이분법적 사고로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색깔론은 전쟁 때나 어울리는 유치한 사고방식

조국 전 민정수석은 SNS에 지난달 13일부터 10여 일간 40회 넘게 일본의 무역보복 관련 글을 올렸다. 강제징용 관련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대법원 판결을 들면서 “일본정부는 한국의 (사법)주권을 모욕하고 자유무역 원칙을 훼손하면서 한국경제에 타격을 주려 한다.” “일본정부의 갑질 앞에서 한국정부와 법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한심한 작태”며,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면 헌법위반자이고 친일파라고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라며 “일본정부 주장에 동의하는지 한국정부와 대법원 입장에 동의하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이런 친일·반일의 이분법은 이미 속마음은 내년 총선에 가 있다는 솔직한 고백으로 들린다. 여당인 민주당의 민주연구원 보고서가 대신 말해주었다. 한·일 갈등과 관련해 ‘단호한’ 대응이 내년 총선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므로 이런 기조를 이어가자고 했다던가. 국내정치에 이용하려고 친일·반일프레임으로 상대방을 친일파로 모는 것은 빨갱이 색깔론으로 좌파를 매도했던 우파와 판박이다. 다른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은 전체주의인 일본 군국주의의 특색이다. 일본 입장에 일부만 동의해도 토착왜구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에게 정말 일본과의 관계를 전적으로 영구히 끊을 자신이 있는지 묻고 싶다.

다양한 의견과 노력을 모아 일본에 앞서는 것이 승리

조 전 수석의 의견이 전혀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우파가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데 한국에서는 정반대다”며 “피(彼)와 아(我)를 분명히 하자”고 했는데, 자신이 속한 좌파만 국익을 위한다는 얘기야말로 색깔론이고 총선용일 뿐 사태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은 안보문제라고 억지를 부리지만 이 사태의 출발점은 작년 말 강제징용판결과 위안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이다. 이런 사법부와 행정부의 조치는 이해가 되지만 국제관계는 다른 차원이다. 강제징용배상도 일본의 최고재판소에서는 우리 피해자들이 패소한 바 있다. 만약 일본이 재단해체에 대해 우리 대통령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서 승소했다면 우리는 인정할까. 대다수 일본국민들은 반도체 소재 수출제한이나 백색국가 제외조치를 지지했다. 우리가 아베의 사진을 찢거나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파기하는 것은 일본사람들의 혐한감정을 고취시킬 것이다. 그것이 아베가 바라는 것이다. 정말 국익을 위한다면 이런 사태를 미연에 막았어야 한다. 그게 정치력이고 외교력이다. 이제라도 사법부 핑계만 댈 것이 아니라 일본이 거부하기 어려운 해결책을 내고 협상해야 한다. 국회도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인수하는 특별법을 통해서라도 뭔가 해야 한다. 색깔론이 아니라 역지사지의 사고가 필요하다. 아베와 트럼프의 공통점은 전체가 아니라 지지층만 본다는 점이다. 우리가 그런 유치한 정치적 술수를 따라하지 말고 미래를 보고 다양한 의견과 줄기찬 노력을 모아 일본보다 월등한 국력을 갖게 되는 것이 진정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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