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 문화칼럼]한국무예영화 100년
[안태근 문화칼럼]한국무예영화 100년
  • 경기신문
  • 승인 2019.09.08 19:21
  • 댓글 0
  •   16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 회장

무예(武藝)영화는 각종 무술을 소재로 한 액션영화다. 무예영화는 무협영화로 주로 소개돼 왔으나 최근에는 꼭 그러하지만은 않다. 판타지, 멜로, 드라마가 섞이며 퓨전화되어 진화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산채왕’은 처음 만든 무협영화이며 그 후 ‘홍길동전’ 등의 무협영화가 만들어진다. 이들 영화가 일본 찬바라(ちゃんばら) 영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영화는 1919년 10월 27일을 기점으로 한다. 그것은 김도산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경성전시의 경’과 연쇄극 ‘의리적구토’가 단성사에서 개봉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무예영화는 한국영화 초창기부터 만들어져 왔다.

광복 이후 광복영화나 반공 계몽영화의 제작으로 한국 무예영화는 제작되지 않았고 과거 영화와 단절된다. 1950년의 한국전쟁 휴전 이후에도 전쟁영화나 멜로영화가 강세를 보였다. 1960년대 들어서며 한국형 무예영화들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흰 도포를 휘날리며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의적 일지매’ 류의 영화를 비롯해 ‘황혼의 검객’ 등 서부영화 제목의 무예영화들이 등장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무예영화 붐은 한홍합작영화의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화들은 오리지널 홍콩영화로 한국영화는 위장합작영화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소룡 사후 본격화된 태권도영화는 한국형 무예영화의 정점을 찍는다. 태권도 영화는 가장 한국적인 무예영화 장르였다. 첫 영화는 1967년 대한연합영화주식회사의 전옥숙이 기획 제작한 ‘태권도 최후의 일격’이다. 태권도의 종주관을 자처하는 정도관과 연도관의 갈등을 그린 영화로 크게 흥행되지는 않았다. 1972년 홍콩에서 돌아온 장일호 감독은 이대엽, 신일룡 주연의 ‘인왕산 호랑이’를 만들었고 1973년 이신명 감독, 신일룡 주연의 ‘동풍’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태권도영화는 성룡의 코믹쿵후 영화가 성행하며 아류작을 양산한다. 태권도 영화의 퇴조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한국형 액션영화를 성행시킨 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이다.

1990년대 위장합작의 역사가 끝나고 정식 공동제작영화가 만들어지는 데 이때 주요 장르도 무협영화다. 아직까지도 장르영화와 액션영화에 대한 편견으로 무예영화는 그 자체의 위상과 함께 연구조차도 부재했다. 철저히 한국의 평론가들에게 외면당한 장르이다. 한국무예영화가 살 길은 우선 다른 나라 영화와 차별화돼야 한다. 홍콩의 액션영화는 그들만의 차별화를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했었다. 홍콩영화계는 오랜 시간 무협영화를 만들어 왔고 일본 역시 찬바라영화를 꾸준히 만들며 각기 자국영화만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런 한국적 장르와 우리 스타일화한 새로운 무예영화가 필요하다.

홍콩영화계는 이소룡과 성룡이라는 글로벌스타로 인해 오늘날 영화 강국이 됐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고유의 전통무술을 바탕으로 수많은 무예영화를 만들어 왔다. 이 영화 역사의 맥을 잇고 한국영화를 중흥시킬 수 있는 한국형 무예영화가 절실하다. 한국영화 100년을 맞는 올해, 한국 무예 영화의 발전 가능성은 유효하며 이제 세계 무예영화와의 차별화를 통해 한류를 알릴 멋진 무예영화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