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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칼럼]미로에서 길을 찾다

 

 

 

 

 

대학에 있다 보니 수강신청을 하는 기간이 되면 많은 상담요청이 온다. 그런데 어느 날 연구실로 나이 지긋한 어머니가 찾아왔다. 이야기인즉슨 딸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는데 어떤 과목을 들어야하는지 고민하길래 답답해서 찾아왔노라고 했다. 대학생 딸의 수강신청을 어머니가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딸에게 조언을 하는 정도면 그냥 넘길 수도 있다. 문제는 수강신청을 대신 해주겠다고 어머니가 자발적으로 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날 학생의 어머니가 오히려 상담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대학생 자식의 수강신청까지 관여해야 하는 어머니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권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타인의 과제에 침범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설령 미움을 받더라도 말이다. 필자 역시 자녀교육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부모와 자녀의 과제분리, 심리적 의존에서 독립하기다. 자식이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을 잡는 것은 부모의 과제가 아니라 자식의 과제이다.

발달심리차원에서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준비를 하느라고 부모에게 까칠하게 군다. 자신이 부모의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안 듣는다. 자기일은 자기가 하겠다고 우기며 어깃장을 놓기 일쑤다. 그러면서 점차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진짜 독립을 해 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우리 모두 다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요즘은 부모가 자녀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병이 생겼다.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려해도 부모가 더 잡아두는 모양새다. 이 어머니의 경우가 전형적인 모습이다. 자식의 과제에 침범해서 그것을 사랑이라 여기고 살아가는 부모들은 자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자녀의 과제가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마치‘내가 없으면 너는 못산다.’라는 명제를 확인시켜주듯 자녀의 과제를 자발적으로 해결해준다. 심리적으로 자녀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성인아이이다. 그 바탕에는 불안이 있다.

필자 역시도 딸아이의 사춘기열병에 마음이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다.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9천개의 미로로 이어진 모로코의 오래된 도시 페즈로 여행을 갔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올듯한 구불구불 좁은 길은 차 대신 망아지 등에 짐을 싣고 다니는 곳, 손을 놓치면 길을 잃기 쉬운 거미줄 같은 미로들. 혼자 도전하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곳이었다.

세월이 흘러 중학교 1학년이 된 딸은 사춘기 반항을 하며 힘들게 하였다. 그때 필자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힘든 경험 그리고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미로같은 그 아이의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딸에게 비행기 티켓을 건네주며 페즈에 혼자 다녀오라 했다. 9천개의 미로를 혼자서 헤쳐 빠져나오면서 아이의 방황도 멈춰지기를 소망한 결단이었지만 딸도 필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천지가 흔들리는 두려움을 뒤로한 용기가 어디서 생기는지 몰라도 우리는 반걸음씩 용기를 냈다. 우여곡절 끝에 딸아이는 그 미로를 혼자 빠져나왔다. 공항에서 만난 딸의 눈물에서 모든 것이 담겨있음을 알았다. 두려움, 용기, 감사함, 그리고 꿈까지 담겼다. 아이는 내게 에세이 한 장을 내밀었다. 제목 “미로에서 길을 찾다” 그 때 우리는 서로 독립을 했다.

아이는 여전히 인생의 미로에서 이리저리 길을 찾는 중이다. 달려가다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다시 미로에서 스스로 길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자. 부모는 자녀가 실패를 경험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그대로의 자녀를 지켜봐주고 이들이 심리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존재이다. 그래서 부모에게는 특별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 시대에는 너무나도 절실히 필요하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주지 않고 참을 용기,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그저 따라가지 않을 미움받을 용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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