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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 문화칼럼]동양의 진주 홍콩

 

 

 

홍콩은 지금의 사태 이전만 해도 아주 이상적인 꿈의 도시였다. 지난 세기에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며 자유를 누리는 이상적인 도시국가로 나아갔다. 그래서 전 세계 금융이 몰리고 무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홍콩을 놀러가는 일은 여러 사람들에게 즐거운 일이었고 ‘홍콩 간다’는 말은 최고의 즐거움을 대변하는 말이 됐다.

홍콩은 한국 영화와 관련 깊은 곳이다. 한국연예주식회사는 1958년 한국 최초로 쇼브라더스와 ‘이국정원’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이후 신상옥 감독이 여러 편의 합작영화를 감독·제작했고 위장합작영화로 일컬어지는 영화교류가 성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한국의 정창화, 장일호, 김수용 감독이 쇼브라더스에 초빙돼 홍콩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또한 김지미, 최무룡, 양훈, 윤일봉, 남석훈, 진봉진, 김기주, 오경아, 방수일, 방인자, 지한재, 황인식, 이해룡, 이승룡, 황정리, 당룡, 권영문, 김정란 등 수많은 배우가 그곳에서 활동하며 홍콩영화에 출연했다.

내게 개인적으로 홍콩은 영화도시로 꿈의 도시였다. 쇼브라더스의 무협영화나 골든하베스트의 성룡영화, 그리고 오우삼 감독의 홍콩 누아르영화를 봤던 세대이기에 홍콩에 대해 갖는 연모 감정은 남다르다. 홍콩은 장철, 호금전 감독이 만든 영화와 이청, 강대위, 적룡, 이소룡, 임청하, 장만옥, 양조위, 왕조현이 출연한 영화로 한국관객들을 매료시켰던 곳이다.

고등학생 때이지만 홍콩에서 활동하던 정창화 감독에게 팬레터를 보냈던 기억도 새롭다. 그만큼 홍콩은 나나 한국 영화인 모두에게 일반적인 외국과는 다른 곳이다.

이런 홍콩이 1997년 중국에 반환되며 일국양체제(一國兩體制)로 포장했지만 결국에는 예견된 일들이 터졌다. 양 체제는 공존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홍콩인들은 자신이 중국인이 아니라는 주장인데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체제가 다른 나라로 살아가다가 외국처럼 느꼈던 나라에 종속되는 갖는 감정은 일제강점기를 살던 우리가 피지배 민족으로서의 갖는 감정일 것이다.

올해 6월 16일 홍콩서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있었다. 집회 주최 측 추산으로 200만 명이 넘는 홍콩 시민이 참가했다는데 홍콩 시민 740만 명 가운데 3명 중 1명꼴로 시위에 참여한 꼴이다.

이렇듯 ‘범죄인 인도법’ 반대로 시작된 홍콩사태가 지난 주 한국에 까지 번졌다. 홍대 근처에서 서로의 지지자들이 맞불 시위를 벌렸는데 둘로 쪼개진 대립 국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누가 아름다운 홍콩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체제의 불협화음은 도를 넘어섰다.

급기야 11월 11일, 시위하던 남성을 겨냥하여 진압 경관이 총을 쏴 시위자가 죽음에 까지 이른다. 홍콩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이제 향후 일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다. 한국의 4·19 혁명이나 광주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었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일은 남의 일이 아닌 듯 와닿는 게 우리도 겪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무릇 민주화를 외치는 민심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결국엔 피를 흘리며 자유를 쟁취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낙관만을 할 수 없는 게 중국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향후 전개 방향이 달라질 수는 있다. 당이 결정하면 그들은 해내기 때문에 제2의 천안문 사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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