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공간에 대하여
[생활에세이]공간에 대하여
  • 경기신문
  • 승인 2020.01.16 18:38
  • 댓글 0
  •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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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안 수필가
최지안 수필가

 

아침 산책을 한다. 호숫가를 걷다보니 가장자리에 작은 집이 보인다. 누런 박스로 된 허름한 집 한 채. 마침 주인장이 고개를 파묻고 아침잠을 자고 있다. 하얀 바탕에 노란 얼룩. 부드럽고 따뜻하게 보이는 등을 쓰다듬고 싶어진다. 그 작은 박스가 고양이의 보금자리인 모양이다.

홍콩의 센트럴역이 생각난다. 내 눈을 붙잡은 것은 동남아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보도블록에 박스를 깔고 앉아 있었다. 가로 세로 120센티미터 정도 되는 공간을 각각 차지하고 박스를 낮게 세워 경계를 구분한 그곳에서 밥도 해먹고 이야기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가사도우미로 온 필리핀 여자들이었다. 임금도 훨씬 싸고 영어를 쓰기 때문에 홍콩 사람들이 고용한다. 그런데 홍콩의 집값이 워낙 비싸고 면적도 좁다보니 그들에게 방 하나를 내줄 수가 없다. 주어진 공간은 선반이나 다락같은 곳이라고 한다. 평일에는 거기에서 잠을 자지만 주말에는 일을 쉬니 그 집에 있을 수가 없어 사람들이 오가는 복잡한 역 주변에 박스를 깔고 앉아 휴일을 보낸다.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위 중 하나가 노예무역이다. 노예선박의 해상 이동 과정은 알다시피 끔찍하다. 선박 갑판 아래 사람이 겨우 누울 자리, 그것도 서있지도 못하는 높이의 공간에서 제대로 옷도 걸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해결해야했던 노예들은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아프리카에 태어났을 뿐이고 노예 사냥꾼의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개인적인 공간도 필요하다. 사람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은 어디일까.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능이외에 심리적인 편안함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 만약 천장이 높으면 불안감을 느끼고 너무 낮으면 짓누르는 느낌을 받는다. 공간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폭과 높이의 비율은 2대 1에서 1대 1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가장 편한 공간은 아무도 없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자기만의 방을 말한다. 버지니아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려면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라는 제약을 넘어서 물질적, 정신적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만이 아니라 누구나 타인의 눈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공간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조지 오웰의 소설은 인상이 깊다.

전체주의의 허상을 간파하고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낀 조지 오웰. 그는 소설 『1984』에서 개인의 삶이라고는 전혀 가질 수 없는 가상의 사회를 보여준다. 개인의 생각조차도 감시받는 전체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주인공은 고문 끝에 결국 그 체제의 동조자가 된다. 소설은 ‘빅브라더’라는 전체주의적인 감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개인의 삶이란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한 인간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군대생활이 힘든 이유 중 하나도 개인적인 생활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의 방을 가지고 살다가 스무 살 넘어 공동생활을 한다는 것은 힘들다. 같은 장소에 있다 보니 먹는 것, 자는 것, 화장실 가는 것을 서로의 눈과 귀에 다 드러내야 한다.

공동생활을 하면 알게 된다. 누구의 감시도 없이 다리를 뻗어 누울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 타인의 눈이 차단된 나만의 공간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타인 앞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개인이 차지하는 공간의 넓이와 인간의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공간이 넓다고 행복한 것도, 좁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공간이 있고 없음의 차이는 크다. 그것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누런 박스를 보면서 공간에 대한 생각을 한다. 고양이나 센트럴역의 필리핀 여성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넓은 공간에 거주하면서도 우리는 왜 더 넓고, 더 호화롭고, 더 비싼 집에 대한 소망을 멈출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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