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동노동자 쉴권리, 국가가 마무리해야
[사설]이동노동자 쉴권리, 국가가 마무리해야
  • 경기신문
  • 승인 2020.01.2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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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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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은 한자로 휴(休)라고 쓴다. 사람이 나무에 기댄다는 뜻이다. ▲하던 일을 잠시 그만 둠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하게 함 ▲잠을 잠 등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성경에는 ▲육체적 노동으로부터의 휴식 ▲마음의 평안과 영원한 안식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마음의 경계와 그 마음까지 모두 잊는다는 뜻으로 마음이 일으키는 번뇌와 마음 밖의 세계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사라진 상태를 의미하는 ‘경식구민(境識俱泯)’이라 설(設)한다. 그만큼 쉼은 인간 삶의 중요한 요소다. 쉬어야 충전되고 충전해야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휴즉충 충즉생(休則充 充則生)’이다.

그러나 우리는 1970년대부터 ‘새벽종’이 울리면서 경제지상주의국가가 됐다. 쉼은 물론 가정조차 돌볼 틈이 없어졌다. 그 결과 ‘한강의 기적’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쉼은 게으름과 나태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동일시 되면서 입밖으로 꺼내면 안되는 단어로 전락했다.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말로 애꿎은 동남아 사람들만 부정적 비교대상으로 몰리던 시절이었다. 자연스레 도시계획 단계에서도 쉼 공간은 우선 순위에서 밀렸고 터부시됐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지난해 경기도의 1인당 휴게공간은 고작 9.6㎡였다. 베를린 등 외국 도시에 비해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경제적 수치(數値)로는 세계 상위권에 올랐지만 정신적 가치는 바닥 수준을 면하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런데 저평가 받았던 쉼의 가치가 경기도에서 부활했다. 민선7기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노동분야 공약사업 가운데 하나인 ‘경기이동노동자 쉼터(쉼터)’에서다. 열악한 환경에서 억지춘향으로 삶을 이어나가던 이동노동자를 중심으로 부활한 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예수의 부활 또는 진흙탕 속에서 핀 연꽃의 이미지와 겹쳐지기 때문이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노동 형태에 대한 대안과 정책의 필요에 따라 쉼터 정책을 시행하게 됐다’는 이 지사의 말은 그래서 유의미하다. 쉼터 1호점이 광주(廣州)시 경안동에서 문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대리운전자와 퀵서비스 종사자, 택배기사, 집배원 등 대기시간이 길고 휴식공간이 없는 이동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헉헉거리며 살아온 사람들이 제대로 된 쉼을 맛볼 수 있게 됐으니 경사(慶事)다.

이제 필요한 건 하루종일 초단위로 움직이는 이동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쉼을 누릴 수 있도록 ‘인간적인 노동환경’을 보장하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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