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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칼럼]남 몰래 흘리는 눈물

 

 

 

며칠 전 오롯하게 혼자서 영화관을 찾았다. 내가 평생을 두고 사랑하는 파바로티와 고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천재 예술가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파바로티와 빛의 마술가라 불릴 고흐의 능력과 감성은 아주 탁월하다. 하지만 그보다 그들은 필자가 삶을 이리저리 엮는 내내 노래로, 그림으로 나를 위로해 준 사람, 씩씩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사랑하면 그 값을 기꺼이 치른다고 했던가. 파바로티가 내한했던 공연과 수많은 CD들을 나는 즐거이 즐겼다. 네덜란드 고흐미술관에서 만난 고흐의 아몬드 꽃은 얼마나 강렬하고 화사했던가! 마치 내가 그 꽃길을 걷는듯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지 수년..이번에는 영화로 이들의 남기고 간 생애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는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창이자 치유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첫 번째 영화에선 파바로티가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을 부르는 그 모습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흘렀고 두 번째 영화에선 가난과 외로움에 살던 고흐에게 운명같이 여겼던 고갱이 떠날 때 그의 슬픔이 전이되어 또 한 번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깜깜한 극장에서 나는 숨죽여 남 몰래 눈물을 훔쳤다.

“난 그저 사람들과 빵 한 조각, 와인 한 모금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예요”.

영화는 고흐의 메마른 독백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모두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감정에 맞서 싸워왔다. 파바로티는 한시라도 사람이 없으면 불안해했고 고흐는 사람을 애타게 그리워했으나 어울리지 못하며 외롭게 자신만의 세계에 파고들었다. 이들이 사람과의 관계가 얼마나 서툰 사람이었는지 새삼 코끝이 찡해졌다.

‘물리적으로 단절되거나 스스로 의사와 상관없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느끼는 고독한 감정 또는 이로 인한 고통’이 외로움의 정의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해롭다고 하니 짐짓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외로움, 고독으로 인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 900만 명에 달한다는 영국은 지난해 외로움을 ‘사회적 전염병’으로 정의하고 외로움을 담당하는 장관을 임명해 국가적 대응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외로움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감정이고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취급되는 인간 내면의 영역인데 이제 정부가 개인의 ‘외로움’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 리서치의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인식 보고서에 의하면 웹 조사에서 1000명에게 물어봤더니 최근 한 달 간 응답자의 4명 가운데 1명이 상시적 외로움에 노출되어 있었고 51%는 가끔 느꼈으며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응답은 23%에 그쳤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전국 열 집 중 세 집이 나 홀로 사는 1인 가구이다. 이렇게 1인 가구 수가 늘어나면서 혼자 사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지만 고립감, 외로움 등이 불러오는 자살과 고독사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외로움에 대해 사회가 함께 고민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고독하다. 인간존재에게 어쩔 수 없이 문득문득 밀려오는 감정이 외로움이고 고독이다. 그러기에 사회적인 관계 망으로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견딜 힘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인다. 시인 황동규는 즐거운 외로움을 홀로+외로움, “홀로움”이라는 시어로 노래했다.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는 쓸쓸하고 초라한 외로움이 아닌 외로움에 매몰되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 혼자 있을 때 문득 찾아온 기쁨으로서의 외로움인 이 홀로움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외로움이 주는 단절과 허무함을 홀로움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음악과 그림 그리고 영화와 책은 우리에게 홀로움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좋은 매체다. 필자가 경험한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은 필경 홀로움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씩씩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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