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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나는 늘 바람 속에 산다

 

 

 

 

 

벗은 나무에 눈부신 봄꽃잔치가 벌어졌다. 곱다. 정말 곱다. 그러나 이 봄꽃잔치가 얼마나 갈 것인지. 금방 피었던 벚꽃이 잠시 눈을 돌린 사이에 낙화 되어 눈꽃처럼 흩날린다. 떨어진 저 꽃잎 자리에 어느새 녹음이 돋아난다. 벌 나비가 날아든다. 햇볕도 따갑다. 저 무성한 산림, 저 무수한 초목들, 푸른 하늘 아래 산천이 참으로 아름답고도 곱다. 그야말로 따사로운 햇살 아래 세상천지가 변하였다. 참으로 호시절이다.

허나 내 마음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외롭고도 그리운 마음에 하루에도 열두 번 창밖을 내다본다. 나에게도 저런 호시절이 있었던가. 아무렴 있었고, 말고 창밖에 내비치는 꽃봉오리 같은 나의 아름다운 시절도 있었다.

내가 살던 시골은 너나없이 가난했지만 나는 그 가난 속에서도 늘 꿈을 꾸어 왔다. 언젠가는 저 십 리 밖 읍내에 나가서 시골 장터도 구경하고 싶었다. 읍내 아이처럼 예쁜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잠시 아버지를 따라 읍내에 나가서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양장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꽃무늬가 화사한 원피스를 맞춤옷으로 내게 입혀주셨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동화 속 공주님 같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내 꿈은 또다시 허공 속의 새처럼 꿈을 머금고 허공으로 치솟았다. 언젠가는 나도 기차를 타고 멀고도 먼 대도시로 나가고 싶었다. 나는 그 바람을 가슴 가득히 품고서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바람처럼 나의 바람도 자꾸만 위를 향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에 익숙해지고 사회생활에 적응해 나갈 즈음이다.

나는 또 백마 탄 왕자가 내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꿈속의 남자는 좀처럼 내 앞에 등장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기다리며 또 그를 그리워하면서 끝내 한 남자를 만났다. 이제 나는 꿈속의 그 남자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애통하게도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한 푼 두 푼 저축을 하면서 그 돈들이 장차 나를 귀부인으로 바꿔 주길 바랐다. 꿈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고 마음속의 바람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나의 곁을 지나가 버렸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그 아이들이 내 꿈을 이루어 주길 바랐다. 힘들고도 고단한 삶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목줄을 휘감았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희망의 줄을 놓은 적이 없었다. 잘 살겠지, 잘 되겠지. 남보다 번듯하게 살게 되겠지. 그런 바람 속에서 청춘이 가고, 중년이 가고 나는 해지는 서산마루 앞에 서게 되었다. 오호 통재라! 눈 앞에 펼쳐진 하늘 가득한 나의 황혼은, 붉은 노을을 바라보면서 어찌하랴, 어찌하랴! 놓을 수가 없구나. 버릴 수가 없구나. 내 꿈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붉은 노을 속으로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제 나는 가슴 속의 바람들을 하나둘 바람처럼 날려 보내야 한다. 그러면서 나를 달랜다. 지나간 날들은 아름다웠다. 내가 놓지 못한 그 많은 꿈은 저 창밖의 녹음방초처럼 푸르고 눈부셨지.

그러나 어찌하랴. 오는 세월을 어찌 막으랴. 오는 바람을 어찌 막으랴. 아직도 나는 바람 속에서 살고 있다.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허허 바람이 분다. 내 마음속의 바람을 안고 저 창밖의 바람이 아득한 소리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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